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274] 창연체하(愴然涕下)

bindol 2020. 8. 2. 07:19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내 동무 어디 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현제명 선생 작사 작곡 '고향 생각'의 1절 가사다. 저물어도 마실 오는 친구 하나 없다. 초저녁부터 허공의 흰 달을 올려다보니 외로움이 바다 같다. 타지의 초라한 거처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각, 막막한 생계 걱정과 앞날 근심만 하염없다.

늦은 밤 연구실을 나와 환한 달빛을 보며 걷다가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어두운 길 위로 그 처연했을 심사가 엄습해와 툇마루에 나와 앉아 하늘 보며 흘리던 그 눈물을 떠올렸다. 인터넷이나 전화가 없던 그 시절에는 그리움도 막막함도 지금과는 농도가 애초에 달랐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의 진자앙(陳子昻·659~700)은 "천지의 유유함을 생각하자니, 홀로 구슬퍼져 눈물 흐른다(念天地之悠悠, 獨愴然而涕下)"고 노래했다. 천지는 인간 세상의 모든 감정을 다 머금고 유유히 흘러간다. 차고 넘치거나 일렁임 없는 유장한 흐름이다. 이를 마주해 그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이 급기야 서글픈 눈물로 맺혀 떨어지더라는 얘기다. 슬픔조차 유장하다.

삶의 속도는 느려터지고 팍팍한 생활고에 배고파 힘들었을망정 오가는 마음만큼은 간절하고 안타까웠다. 단추 몇 개만 누르면 바다 건너 가족 얼굴이 화면에 뜨고,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이 편한 세상에서는 떠올리기 힘든 감정이다. 마음에 안 든다고 치약 하나를 다 짜서 먹이고 급기야 때려죽이기까지 하는 것이 요즘 군대다. 고일 틈 없이 소비되는 감정에 길들어 사람 목숨도 게임의 리셋 버튼 누르듯 할 수 있다고 믿은 걸까? 속도의 시대가 낳은 젊은 괴물들의 흉포함을 어찌해야 옳은가? 자리보전에 급급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덮기 바쁜 이들의 행태도 밉다.

2절 가사는 이렇다. "고향 하늘 쳐다보니 별 떨기만 반짝거려.… 저 달도 서쪽 산을 다 넘어가건만, 단잠 못 이뤄 애를 쓰니 이 밤을 어이해."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의 불면도 자꾸 깊어져만 간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05/20140805039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