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오정한(吳廷翰·1491~1559)의 책상 옆에는 나무로 짠 궤 하나와 옹기 하나가 놓여 있었다. 책을 읽다가 의혹이 생기거나 생각이 떠오르면 얼른 적어 그 안에 담아 두었다. 역사책을 읽다가 일어난 의문은 항아리 속에 넣고, 경서를 읽다가 떠올린 생각은 궤에 담았다. 각각 상당한 분량이 되자 그는 이를 따로 엮어 책 한 권으로 묶었다. 옹기에 담긴 메모는 '옹기(甕記)'란 책이 되고, 궤에 든 쪽지는 '독기(櫝記)'란 책이 되었다.
생각은 원래 책상맡보다 화장실이나 침상 위에서 더 활발해진다. 떠오를 때 즉시 잡아두지 않으면 안개처럼 흩어진다. 느닷없이 왔다가 섬광처럼 사라지는 생각을 붙들자면 손 닿는 곳에 메모지와 필기구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기억보다 메모가 한결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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