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곳간 옆에 사는 백성이 있었다. 그는 아무 하는 일 없이 평생을 백수로 살았다. 종일 집에서 빈둥거리다 저녁때가 되면 어슬렁거리며 나가 밤중에 돌아왔다. 손에는 어김없이 다섯 되의 쌀이 들려 있었다. 어디서 난 쌀이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수십 년을 흰 쌀밥 먹고 좋은 옷 입으며 온 식구가 잘 살았다. 막상 집안을 들여다보면 세간은 하나도 없었다.
권필은 이야기 끝에 이렇게 썼다. "구멍을 뚫는 것은 소인의 악행이다. 하지만 진실로 만족할 줄 알았다면 몸을 지킬 수 있었으니, 백성이 그러하다. 되나 말은 이익이 작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족할 줄 모르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 아들의 경우가 그렇다. 하물며 군자이면서 족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어떻겠는가? 하물며 천하의 큰 이익을 취하면서도 족함을 알지 못하는 자라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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