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513] 앙급지어 (殃及池魚)

bindol 2020. 8. 5. 06:03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초나라가 원숭이를 잃자 화가 숲 나무에 이르렀고, 성 북쪽에 불이 나니 재앙이 연못 물고기에 미쳤다.(楚國亡猿, 禍延林木. 城北失火, 殃及池魚.)"는 말이 있다. 명나라 고염무(顧炎武)가 쓴 '일지록(日知錄)'에 보인다. 고사가 있다.

초나라 임금이 애지중지 아끼던 원숭이가 있었다. 어느 날 요 녀석이 묶인 줄을 풀고 달아났다. 임금은 원숭이를 잡아 오라며 펄펄 뛰었다. 숲으로 달아난 원숭이는 나무 위를 뛰며 도망 다녀 잡을 방법이 없었다. 임금의 노여움은 더 커졌다. 하는 수 없어 이들은 원숭이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온 숲을 에워싼 뒤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결국 원숭이도 못 잡고 그 좋던 숲만 결딴이 났다.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얘기다.

이번엔 성 북쪽에 불이 났다. 불의 기세가 워낙 다급해서 불길을 잡기가 어려웠다. 성안의 모든 사람이 다 나와서 연못의 물을 퍼 날라 간신히 불을 껐다. 불을 끄고 나니 연못 물이 바닥이 나서 애꿎은 물고기만 맨바닥에서 퍼덕거렸다. 명나라 진정(陳霆)의 '양산묵담(兩山墨談)'에 보인다.

뒤의 것은 비슷한 얘기가 하나 더 있다. 송나라 환퇴(桓魋)에게 값비싼 구슬이 있었다. 그가 죄를 입고 도망을 가려 할 때 왕이 사람을 보내 구슬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연못 가운데다 던져 버렸소." 왕은 그 구슬을 차지하려고 사람을 시켜 넓은 연못의 물을 다 빼고, 진흙 바닥까지 온통 헤집었다. 애초에 버린 적이 없던 구슬이라 끝내 찾지 못했다. 그 와중에 연못의 물고기만 공연히 떼죽음을 당했다. 여씨춘추 '필기(必己)'편에 보인다.

 


원숭이 한 마리의 우연한 탈출이 온 숲의 나무를 결딴냈고, 성안에서 어쩌다 난 실화(失火)에 전체 연못의 물고기가 다 죽었다. 앙급지어(殃及池魚)는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로 뜻하지 않는 횡액을 만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쓴다. 나무와 물고기는 엉뚱하게 튄 불똥을 맞았다. 자신이 잘못한 것도 없고,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세상일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화복을 알기가 어렵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요행(僥倖) 속에 산다. 그럴수록 늘 반듯한 삶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02/201904020344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