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521] 심동신피 (心動神疲)

bindol 2020. 8. 5. 06: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당나라 때 중준(仲俊)은 나이가 86세인데도 너무나 건강했다. 비결을 묻자 그가 말했다. "어려서 '천자문'을 읽다가 '심동신피(心動神疲)'라고 말한 네 글자에서 깨달은 바가 있었지. 이후 평생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차분히 가졌을 뿐이라네." 그는 '천자문(千字文)'의 "성품이 고요하니 정서가 편안하고, 마음이 움직이자 정신이 피곤하다(性靜情逸 心動神疲)"는 구절에서 일생 공부의 화두를 들었던 셈이다.

우강(旴江)의 구도인(丘道人)은 90여 세로 온통 흰머리뿐이었지만 얼굴엔 늘 화색이 돌았다. 겨울 여름 할 것 없이 한 벌 홑옷으로 났고, 비와 눈을 막지 않았다. 그는 바구니 하나를 늘 지니고 다녔는데, 뒤편에 작은 패쪽 하나를 매달아 놓았다. 거기에는 시 네 구절이 적혀 있었다. "늙어 더딤은 성품이 게을러서고, 병 없는 건 마음이 넉넉해서지. 살구꽃은 지나는 비 감당 못 해도, 푸른 솔은 겨울 추위 능히 견디네(老遲因性慢 無病爲心寬 紅杏難經雨 靑松耐歲寒)." 나이가 들어 행동이 굼뜬 것은 노쇠해서가 아니라 젊었을 때보다 성품이 느긋해져서다. 병 없이 건강한 비결은 마음가짐을 늘 너그럽게 하려고 애쓴 덕분이다. 붉게 핀 살구꽃은 지나가는 비를 맞고도 땅에 떨어진다. 푸른 솔은 혹한 속에서도 그 푸른 기상을 잃지 않는다. 살구꽃이 한때의 화려함으로 눈길을 끌지만, 나는 추운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소나무의 푸르름을 간직하겠다. 이것이 그가 바구니에 매단 글귀에 담은 생각이다.

소강절(邵康節)도 이런 시를 남겼다. "늙은이의 몸뚱이는 따뜻해야 하느니, 안락와 가운데에 따로 봄이 있다네. 선옹이 쓸모없다 다들 얘기 하지만, 그래도 제 한 몸은 건강하게 지킨다오(老年軀體素溫存 安樂窩中別有春 盡道仙翁拙于用 也能康濟自家身)." 안락와(安樂窩)는 그의 거처 이름이다. 몸을 따뜻하게 간수하며 집 안에서 편안하게 지내니 일년 내내 봄날이다. 사람들은 나를 두고 이제 별 쓸모가 없다고들 얘기하지만, 내 몸 하나만은 건강하게 잘 지키며 산다. 그거면 됐다. 더 욕심 부리지 않겠다. 세 글 모두 명나라 왕상진(王象晉)의 '일성격언록(日省格言錄)'에 나온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29/20190529039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