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542] 당방미연 (當防未然)

bindol 2020. 8. 5. 06:44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명나라 왕상진(王象晉·1561~1653)의 일성격언록(日省格言錄) 중 '복관(服官)'편은 벼슬길에 나가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적은 글을 모았다. 그중 한 대목.

'관직에 있는 사람은 혐의스러운 일을 마땅히 미연에 막아야 한다. 한번 혐의가 일어나면 말을 만들고 일을 꾸미는 자들이 모두 그 간사함을 제멋대로 부린다. 마원(馬援)의 율무를 길이 교훈으로 삼을 만하다(居官者嫌疑之事, 皆當防於未然. 一涉嫌疑, 則造言生事之人, 皆得肆其奸矣. 馬援薏苡, 可爲永鑑).'

마원의 율무 이야기는 사연이 이렇다. 후한(後漢)의 명장 마원이 교지국(交趾國)에 있을 때 일이다. 그곳의 율무가 몸을 가볍게 해 남방의 풍토병을 예방하는 데 좋다고 해서 이를 상복했다. 돌아올 때 수레 하나에 율무를 싣고 돌아왔다. 그가 죽자 헐뜯는 자가 황제에게 글을 올려 마원이 수레 가득 진주와 물소 뿔 같은 온갖 진귀한 물건을 싣고 와서 착복했다고 참소했다. 황제가 격노했다. 그의 처자가 두려워 장사도 치르지 못했다. 황제에게 여섯 차례나 애절한 글을 올리고야 오해가 풀려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이런 말도 보인다. '사대부는 마땅히 천하가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지, 천하 사람이 상식적이라 여길 수 없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士大夫當爲天下必不可少之人, 莫作天下必不可常之事).' 상식에 벗어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천하가 무겁게 대접해 주기를 바랄 수는 없다. '관직에 나아가는 방법은 닥친 일은 내버려두지 않고, 지나간 일은 연연하지 않으며, 일이 많아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蒞官之法, 事來莫放, 事去莫追, 事多莫怕).' 급히 해야 할 일은 다 미뤄두고, 묵은 일만 있는 대로 들추다가 정작 일이 생기면 겁을 먹고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꽁무니를 뺀다.

'군자는 사소한 혐의를 능히 받아들인다. 그래서 변고나 싸움 같은 큰 다툼이 없다. 소인은 작은 분노를 능히 참지 못하므로 환히 드러나는 패배와 욕됨이 있게 된다(君子能受纖微之小嫌, 故無變鬪之大訟. 小人不能忍小忿, 故有赫赫之敗辱).' 작은 잘못은 인정하면 그만인데, 굳이 아니라고 우기다가 아무것도 아닐 일을 큰일로 만든다. 안타깝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23/20191023038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