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큰 일은 제사와 전쟁이다(國之大事 在祀在戎).” 『좌전(左傳)』의 명구다. 사(祀)는 국가의 공적인 제사를, 융(戎)은 군사행동 혹은 전쟁을 말한다.
한자 열(閱)은 문 안을 검사해 사물의 수량을 점검한다는 뜻이다. 문(門)과 태(兌)로 이뤄진 형성자(形聲字)다. 태(兌)는 고대에 기쁠 열(悅)과 통했다. 이후 ‘살펴서 보다’라는 뜻이 됐다. 검열(檢閱)·열람(閱覽)으로 쓰인다. 열병(閱兵)은 병사와 무기를 모아 점검하는 훈련이다. 요즘의 군사 퍼레이드다.
중국에서 최초의 열병은 하(夏)나라 초에 있었다. 북방 화하족(華夏族)의 우두머리 우(禹)왕이 투산(涂山·도산)에 모든 부락의 수령을 모아 회맹(會盟)했다. 병사들의 무기를 깃털로 장식하고 사열(査閱)했다고 전한다. 춘추(春秋)시대에는 열병이 잦아졌다. 방식도 변했다. 사냥이 도입됐다. 최고통치자가 앞장서 활로 짐승을 사냥한 뒤 병사와 전차를 검열했다. 이후 해마다 거행되는 사열을 수(搜)라 불렀다. 봄 사냥을 일컫는 글자다. 3년에 한 차례 이뤄지는 열병은 대열(大閱), 5년마다 치르는 열병은 대수(大搜)라 불렀다.
조선에서도 열병이 잦았다. “임금이 상왕을 모시고 낙천정에 행차해 오위의 진을 열병했다(上奉上王幸樂天亭 大閱五衛陣).” 조선왕조실록 세종 3년(1421)의 기록이다. 열병은 실록에 140여 차례 기록됐다.
청와대가 오는 9월 3일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승전 70주년 기념 열병식 참석을 놓고 고민 중이다. 중국의 열병식은 개혁개방 이후로는 1984·1999·2009년에만 거행됐다. 이번 열병은 파격(破格)이다. 시진핑(習近平) 권력의 완성을 뜻한다. 해외정상 초대도 파격이다. 지금까지 천안문 사열대에는 1959년 흐루쇼프 소련공산당 서기장, 김일성, 노로돔 시아누크 캄보디아 국왕만이 앉았다. 미국은 89년 천안문사태를 거론하며 불참을 종용(慫慂)한다.
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로 중국 관광객이 뜸해졌다. 중국의 민심을 되돌리려면 열병식 외교가 필요하다. 김정은 참석도 기대해 보자. ‘통일대박론’은 말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신경진 중국연구소·국제부문 기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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