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봄의 밤에 내리는 비를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이렇게 표현했다.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우리말로 풀면 “만물을 적시는구나, 촉촉이, 소리 없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한자세계에서 비를 그린 가장 뛰어난 형용이다. 우리말처럼 쓰고 있지만 본래는 한자에서 유래한 단어가 빗발이다. 한자로는 雨脚(우각)으로 적는다. 두보의 시를 처음 우리말로 풀었던 <두시언해(杜詩諺解)>에서 비롯해 이제는 자연스런 우리말로 자리를 잡았다.
‘비’의 한자 雨(우)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표현한 글자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는 물의 총칭은 강수(降水)다. 보통은 눈과 비로 나눈다. 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빗댄 말은 운자(雲子)다. ‘구름의 아들’이다. 겨울 뒤 맞는 봄에 차갑게 내리는 비는 동우(凍雨), 냉우(冷雨)다. 땅을 촉촉하게 적시는 가랑비는 세우(細雨)다. 소나기는 우선 취우(驟雨)다. 대지를 달리는 말들과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소나기는 오래 내리지 않는다(驟雨不終日)’는 말이 있다. 일시적인 현상이 오래 갈 수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소나기 형태지만 더욱 오래 퍼부어 피해를 내는 비가 있다. 폭우(暴雨)다. 폭우의 종류도 적지 않다. 비의 양이 많으면 그저 호우(豪雨)다. 비가 쏟아지는 형태를 표현한 말은 분우(盆雨)다. 물동이(盆)를 쏟아 붓 듯 내리는 비라는 뜻이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는 뇌우(雷雨)다. 중국 남부 지역에서 매실 익을 때 내리는 비는 매우(梅雨)로 적었다. 메마른 땅을 적실 정도의 비는 투우(透雨)다. 땅을 뚫고 내려가는 비, 투지우(透地雨)의 준말이다. 사흘 이상 이어지는 비는 임우(霖雨)다. 장맛비다.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는 의미의 천루(天漏)는 그칠 줄 모르는 비다.
단비는 때맞춰 내리는 비다. 그에 맞는 한자 단어가 급시우(及時雨)다. 『수호전(水滸傳)』 양산박(梁山泊) 108 두령의 첫째인 송강(宋江)의 별칭이기도 하다.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감림(甘霖)도 마찬가지다. 가뭄과 더위를 식히는 비다. 불볕더위가 모질게 이어져 비 내리는 날, 우천(雨天)이 그리워 떠올려 본 비의 표현들이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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