實用 漢字

[漢字, 세상을 말하다] 近水樓臺 근수누대

bindol 2018. 7. 3. 08:16


“천하의 근심을 먼저 걱정하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한 뒤에 즐거워하라(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歟).”
북송(北宋)시대의 걸출한 문인 범중엄(范仲淹·989~1052)이 지은 ‘악양루기(岳陽樓記)’의 한 구절이다. 이를 줄인 ‘선우후락(先憂後樂)’은 동서고금을 초월해 식자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기본 자세다.

범중엄이 지금의 중국 항저우(杭州) 인근 전당(錢塘)에서 지방관으로 근무할 때였다. 그는 인근 관리들 가운데 인재를 조정에 추천해 적재적소에 쓰일 수 있도록 도왔다. 어느 날 외지 순찰을 도느라 범중엄의 눈에 들지 못한 소인(蘇麟)이 시를 지어 보냈다.

“물 가까이 있는 누대는 먼저 달을 얻고(近水樓臺先得月),
햇빛 향한 꽃과 나무는 쉽게 봄을 만나네(向陽花木易逢春).”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이 부족함을 깨달은 범중엄은 곧 그가 원하는 부서에 추천서를 써주었다. 송나라 유문표(兪文豹)의 청야록(淸夜錄)에 나오는 일화다. 그로부터 실력자의 눈에 들어야 출세할 수 있다는 뜻의 ‘근수누대(近水樓臺)’란 성어가 생겼다. 이를 조선 말기의 문신 이유원(李裕元·1814~88)은 이 시가 당(唐)나라 때 신라에 조문사절로 왔던 위단(韋丹)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임하필기(林下筆記) 중 ‘밝혀진 성어를 기록하다(記現成語)’란 문장에서다.

근수누대는 지금도 중국에서 세 가지 정도의 용례로 사용된다.
첫째, 배산임수의 뛰어난 지리적 입지다. 근수누대란 이름의 아파트가 천정부지의 가격으로 팔린다. 둘째, 매관매직(賣官賣職)이다. 지방 말단에서 자행된 인사부정을 비판한 인민일보의 평론 제목이기도 했다. 셋째, 1952년 홍콩에서 제작된 영화의 제목이다. ‘첨밀밀(甛密密)’을 부른 덩리쥔(鄧麗君)이 동명의 주제가를 불렀다. 영문 제목은 ‘가까울수록 더 좋아(The Closer the Better)’였다.

근수누대식 인사의 피해는 크다. 정권 말이 되자 연일 신문 지상을 장식하는 부정부패도 결국 ‘내 사람 챙기기’ 인사의 폐해다.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근시안(近視眼)은 위험하다. 올 연말 큰 선거를 앞두고 근수누대에 똬리를 트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소식에 걱정이 앞선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漢字, 세상을 말하다] 近水樓臺 근수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