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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2류 숙명 나라에 세계 1류 DNA 심은 혁신의 이건희

bindol 2020. 10. 26. 05:25

조선일보

입력 2020.10.26 03:26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명언들과 경영 활동 모습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타계했다. 이 회장은 45세 때인 1987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에게서 경영권을 물려받아 2014년 병석에 눕기 전까지 27년간 삼성그룹을 이끌며 글로벌 1등 기업으로 키워냈다. 이병철, 정주영 같은 창업 세대가 세계 최빈국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던 산업화의 1세대 거목이었다면, 이 회장은 오너 2세 경영자였지만 수성(守成)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1등 DNA’를 심으며 대한민국 기업을 세계 정상에 오르게 한 ‘창조적 파괴’와 혁신의 1세대 기업가였다.

삼성전자라는 세계 1등 기업을 갖기 전까지 우리 사회에 일류 의식은 부재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20세기 후반 뒤늦게 산업화에 시동을 걸면서 한국은 서구 선진국과 일본을 모방하고 따라잡기에 급급했다. 세계 자유 무역 질서에 적극 편입한 덕분에 고도성장도 이뤘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는 어디까지나 세계 시장에서 싸구려로 이·삼류 취급을 받았다. 우리 스스로도 글로벌 1위 브랜드, 1등 기업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만큼 자조(自嘲)적이었다. 그러면서도 경제가 성장해 좀 먹고 살 만해지니까 “이만하면 됐다”는 대충주의와 안일함이 팽배했다.

이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았을 당시 삼성도 세계시장에서는 존재감이 없었다. 심지어 국내 1위 그룹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회장은 취임과 함께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공언(公言)했다. 그 취임사가 결코 공언(空言)에 그치지 않았다.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그 ‘세계 일류’를 불과 한 세대도 안 돼 실현했다.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지만 세계 초일류 기업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 회장이 보여준 통찰력과 승부 근성은 백 마디 말보다 우리 사회에 울림이 컸다.

‘이건희’ 하면 지금도 떠오르는 장면이 “마누라와 자식 빼곤 다 바꾸라”는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新)경영 선언, 그리고 휴대전화의 품질 향상을 요구하면서 삼성전자 애니콜 15만대를 불태워버린 1995년의 휴대전화 화형식이다. "삼성이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다”고 위기의식을 불어넣으면서 경영의 핵심 가치를 물량에서 품질로 전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고객이 두렵지 않습니까”라고 품질 향상을 강조하면서 이후 생산된 애니콜 제품에는 ‘품질은 나의 인격이요, 자존심’이라는 글귀까지 새기게 했다. 그만큼 ‘세계 일류’가 되기 위해 집요했다.

세계 변방에 머물러 있던 ‘메이드 인 코리아’의 적당주의와 이류 의식을 과감히 깨부수는 혁신 경영의 전형을 보여줬다. 이는 비단 삼성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산업계와 한국 사회에 ‘코페르니쿠스의 전환’과도 같은 충격을 던져주었다.

 

2003년 전체 판매량의 27%에 달하는 브라운관 TV 생산을 중단한 적도 있다. 당장 매출에 손실이 가더라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대에 디지털TV로 승부하겠다는 뚝심이었다.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처음 등장해 세계 휴대전화 시장이 급변할 때도 머뭇대지 않고 발 빠르게 흐름을 따라잡아 삼성전자를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스마트폰 강자로 만들었다. 글로벌 초일류에 대한 이런 집념이 오늘날 삼성전자의 반도체·휴대전화·TV 사업을 세계 1위로 성장시켰고, 삼성의 브랜드 가치를 세계 톱 10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하지만 기업인으로서 그의 탁월함은 이런 사업적 판단과 외형 확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양과 질에서 모두 일본 기업을 압도한 최초의 경영자이기도 했다.

이 ‘은둔의 승부사’ 덕분에 대한민국은 반도체, 가전 등의 분야에서 실력으로 일본을 누르는 진정한 ‘극일(克日)’의 통쾌함도 맛볼 수 있었다. 이 회장은 오늘날 한국 경제가 향유하는 ‘반도체 강국’의 일등 공신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진출을 결단한 것은 이병철 창업주였지만 그에 앞서 이 회장은 누구도 반도체의 중요성에 주목하지 않았던 1974년 반도체 사업을 이병철 선대 회장에게 건의해 초석을 닦았다.

경영권을 쥔 후에는 과감하고 공격적인 투자로 일본·미국 업체를 따돌리고 반도체 독주 체제를 굳혔다. 글로벌 시장에서 “무모한 짓”이라고 비판할 때도 시장의 흐름을 내다보고 불황기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했다. 이후 삼성은 경쟁 기업들에 추격을 허용치 않는 ‘초격차 전략’으로 반도체 시장을 압도했다. 삼성전자는 D램 부문에서는 28년 연속, 낸드플래시 부문에서는 17년 연속 세계 시장의 독보적 1위를 지키고 있다. 오늘날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며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한국 반도체의 신화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기업사와 기업인의 궤적에 명암(明暗)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회장은 누가 뭐라 해도 대한민국 경제사에서 최초로 한국 기업의 위상을 글로벌 톱 플레이어의 반열까지 끌어올리며 거대한 족적을 남긴 거인이었다. 우리도 ‘세계 1등’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언제 무너지고 사라질지 모른다는 그의 메시지는 그가 떠난 이후에도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