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16.교정(校正)

bindol 2020. 12. 21. 06:02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16.교정(校正)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2013. 8. 16. 09:48


중국 동진(東晋 AD316~420년) 시기의 무덤에서 나온 토용의 모습이다.
둘이 마주 앉아 진지하게 글을 다듬는 문장 교열인의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쓰인 글에 잘못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일이 바로 교정(校正)이다. 글자 ‘교(校)’에 그런 행위를 가리키는 새김이 있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게 ‘바로잡다’의 의미를 지닌 ‘정(正)’이다. 그러나 이 단어의 뿌리를 좇아 올라가면 우리는 이상한 글자와 마주친다. 바로 원수(怨讐)를 뜻하는 ‘수(讐 또는 讎라고도 쓴다)’라는 글자다.

교정이라는 글 다듬기 작업과 ‘원수’는 도대체 어떻게 어울릴까. 과거 중국에서는 글 교정 작업을 수서(讐書)라고 적었다. 교정을 맡은 사람 둘이서 서로 마주 보며 앉아 한 사람은 읽고 한 사람은 내용을 보면서 매우 치밀하게 글을 다듬는 작업이었다. 원래 그 뜻에서 출발한 ‘수’라는 한자는 글을 다듬는 두 사람의 태도가 마치 적을 대하듯 심각하게 다투는 모습을 닮았다는 이유로 ‘원수’의 의미를 얻었다고 보인다.

종이를 발명하기 이전에는 대나무 등을 쪼개 만든 죽간(竹簡)이나 얇은 비단 등에 글을 썼고, 다시 그 내용을 다른 죽간이나 비단 등에 옮기는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이었으니 한 글자 한 글자를 다루는 신중함이 보통이 아니었으리라. 따라서 한 글자에 쏟아 붓는 주의력과 그로부터 나오는 스트레스는 현대의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단어가 수교(讎校) 또는 교수(校讎)다. 아울러 교서(校書), 두 사람이 마주 앉아 글을 다듬는다고 해서 대서(對書) 또는 대교(對校)라는 단어도 나왔다. 교감(校勘)과 교열(校閱)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이 모두 정확하며 그르침이 없는 결과를 얻기 위한 치열한 노력의 과정이다.

종이가 세상에 선을 보여 글 쓰고 다듬는 과정이 좀 나아졌겠으나 교정에 관한 노력은 여전했을 법. 그러나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글을 만지고 다듬는 과정은 매우 수월해졌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가 틀리면 지우개나 뭐 그런 것 없이도 그냥 지우고 다시 쓰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우리 청와대도 그런 흐름에 푹 빠졌나보다. 세법 개정안을 발표한 청와대 경제팀이 중산층으로부터 사실상 증세를 시도했다가 여론의 질타에 밀려 입장을 바꾼 일 말이다. 물론 글을 다듬는 작업은 아니었으나, 막바지에 그를 세심하게 따져보는 ‘내용의 교정’에서는 실패한 셈이다.

얼굴을 붉혀 가면서 원수를 대하듯 글을 다듬고 다듬었던 옛 동양의 교정자들로부터 청와대는 아무래도 크게 배워야 할 듯하다. 국민을 상대로 내놓는 정책의 무게에 비춰 그를 다듬고 고치며, 마지막 순간까지 검토하고 또 검토하는 치열함은 어디에도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자 풀이]

(학교 교): 아무래도 학교(學校)의 새김이 우선이다. 그러나 군대 또는 그들이 머무는 군영(軍營)의 뜻도 있다. 옛 동양 군인의 직위에 이 글자가 자주 들어간다. 요즘 군대의 ‘장교(將校)’도 이 글자를 붙인다. 교위(校尉) 등의 옛 군인 장교 명칭이 유명하다. ‘헤아리다’ ‘따지다’ 등의 의미도 있다. ‘교정’ 등의 단어에서 나오는 쓰임새다.

(원수 수): 讎와 같은 글자다. 원수라는 의미가 우리에게는 워낙 강하다. 그 초입에서는 본문에서 소개했듯이 글을 다듬는 두 사람의 의미였을 것이다. ‘대답하다’, 또는 ‘갚다’ 등의 새김도 있다.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怨讐)’라는 말은 우리에게 쓰임이 많다. 함께(俱) 같은 하늘(天)을 이고(戴) 살 수 없는(不) 원수라는 의미다.

 

[중국어]

 

 

 

校正 jiào zhèng: 학교의 의미를 나타낼 때 校의 발음은 xiào다. 고치다, 다듬다 등의 ‘교열’ 이라는 의미일 때는 발음이 jiào다. 주의하자.

校阅(閱) jiào yǖe: 우리가 흔히 쓰는 교열과 같다. 중국어에서는 문자를 다듬는 교열의 의미를 넘어 남을 감독하거나, 일의 오류 유무를 체크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경우도 많이 보인다.

校勘 jiào kān: 조사하는 행위다. 뒤의 勘이라는 글자도 조사, 감독 등의 행위를 의미한다.

校对(對) jiào duì: 교열작업을 가리키는 단어다.

校雠(讎) jiào chóu: 위와 같다.

雠(讎)와 讐 chóu: 같은 글자다. 그러나 현대 중국어에서는 ‘仇(원수 구)’라는 글자로 이 의미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발음은 같다. 원수에게 사무친 한을 ‘仇恨 chóu hèn’이라고 적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同仇敌忾(敵愾) tóng chóu dí kài: 많이 쓰이는 성어다. 같은 적을 두고 함께 대항한다는 의미다.

冤家路窄 yuān jiā lù zhǎi: ‘冤家’는 역시 원수를 가리킨다. 원수와 마주치는 길(路)이 좁다(窄)는 의미인데, 우리말로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와 같은 의미다. 잘 쓰는 성어다.

‘왜 하필 또 저 녀석이지…’라며 속으로 끌탕을 칠 때 많이 사용한다.



출처: https://hanjoong.tistory.com/entry/한자-그물로-중국어-잡기-16교정校正?category=662101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