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175. 망언(忘言)

bindol 2020. 12. 25. 06:01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175. 망언(忘言)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2016. 11. 2. 15:08

중국 전원파 시의 서막을 연 도연명.

'음주'라는 시에서 망언(忘言)의 경계를 노래했다.

 

 

다섯 말의 쌀(五斗米)에 허리를 굽히지 않겠다는 뜻을 품고 전원으로 돌아온 도연명(陶淵明)은 이런 소회를 읊는다. “사람들 사는 곳에 집을 지었지만, 수레소리 말의 울음소리 들리지 않는다. 왜 그렇다고 할까? 마음 멀어지면 사는 곳도 으슥해지는 법이지.”

 

이 글의 마지막 구절은 한자로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이다. 풀이는 사실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세속의 명리(名利)를 떠난 마음의 경지는 그런 번잡함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몸을 돌리게 만든다. 그런 마음의 경계를 도연명은 이 같은 표현으로 적었다.

 

도연명의 음주(飮酒)’라는 시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시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에 속한다. 이전에도 소개했던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를 캐다가, 문득 저 멀리의 남산을 바라보다라는 구절도 위 내용에 이어 바로 등장한다. 세상과 나, 물아(物我)의 분별을 모두 잊는 마음의 경계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 등장하는 내용이 범상치 않다. 자연에 풀어 놓은 마음자리를 설명하다가 시인은 이 안에 진정한 뜻이 있을지니, 말을 하려 해도 이미 잊도다(此中有眞意, 欲辯已忘言)”고 한다. 말을 하려 하지만 그 말 자체를 잊는다는 얘기다.

 

세상과 나, ()과 주() 등의 분별이 모두 없어지는 물아양망(物我兩忘)이다. 그런 경우에 사람의 말이 도대체 무슨 소용일까. 느껴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나 어렴풋하게나마 그 속내를 짐작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할 말을 잊는 그런 경우, 즉 망언(忘言)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글귀다.

 

그러나 좋은 뜻이다.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을 잊는 경우가 많다. 그런 때도 역시 망언이다. 이를 테면 망기소언(忘其所言)’인데, 우리말로 옮기자면 말할 바를 잊다의 상황이다. 불가(佛家)에서 흔히 일컫는 언어도단(言語道斷)도 마찬가지다.

 

원래의 언어도단은 절대의 깨달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를 일컫는데, 세속의 상황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어 정말 아무런 이야기조차 할 수 없다의 뜻으로 쓴다. 도연명이 말을 잊은 망언(忘言)의 경지가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오는상황으로 전의(轉義)하는 케이스와 같다.

 

좋아서 더 이상 다른 것은 보지 않아도 무방한 경우를 일컫는 말이 관지(觀止)’. 훌륭한 옛 글들을 모아 최고의 옛 글을 여기에 뒀으니 다른 글은 볼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편찬한 책 <고문관지(古文觀止)>의 이름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우리는 지금 할 말을 잊고, 더 이상 구설(口舌)로는 표현할 수 없는 풍경과 마주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그보다 더 한 상황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에서 관지(觀止)에도 해당하는 모습들이다. 청와대의 주인인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을 비롯한 비선과 공식 라인의 참모진 행태들을 지켜보고 있어서 그렇다.

 

이들이 권부 핵심에서 벌인 스캔들이 참 별나다. 대한민국이 맞은, 매우 보기 드문 수준의 위기다. 그를 수습하는 방안도 아주 어지럽다. 판단력과 그를 뒷받침하는 사고력도 매우 위태롭다. 어떻게 이 지경에까지 흘러들고 만 것일까.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의 실패다. 그런 점에서 말을 잊었다. 망언(忘言)이다. 말을 해보려 해도 뚝 끊기고 만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눈을 들어 앞을 보려고 해도 더 이상 보고 싶지가 않다. 관지(觀止). 눈과 입, 귀까지 이제는 다 닫고 싶은 심정이다.



출처: https://hanjoong.tistory.com/entry/한자-그물로-중국어-잡기-175-망언忘言?category=662101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