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182. 세시(歲時)

bindol 2020. 12. 26. 06:02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2016. 12. 21. 16:24

 

조선에서 때(歲時)에 맞춰 해야 할 농사일을 적어 배포했던 농가월령의 표지다.

<사진=국립민속박물관>

 

 

때로는 설, 때로는 한 해에 찾아드는 절기를 가리키다 다시 때로는 한 해 중의 어느 때, 또는 그저 세월이라는 뜻으로 풀 수 있는 말이 세시(歲時). 따라서 함의가 여럿이다. 이 글을 적는 날이 한 해의 스물 넷 절기 중 스물둘째인 동지(冬至)여서 떠올리는 말이다.

 

시간의 갈마듦은 꾸준하다. 해가 떴다 지고, 달이 스쳐 지나가고, 그로써 한 해도 저문다. 늘 변함없는 시서(時序)의 흐름이지만 그 속을 나그네처럼 스쳐가는 사람에게는 빠르게만 느껴진다. 동지 지나면 양력의 한 해는 곧 저물고 만다.

 

내가 발을 딛고 사는 이 땅의 시간은 저 먼 곳에서는 어느 무렵일까. 북송(北宋)의 문인 소동파가 그를 품어본 적이 있다. 술잔을 들고 달을 쳐다보며 묻는 사()에서다. “하늘의 궁궐에서 오늘 저녁은 어느 시절인지 모르겠다(不知天上宮闕, 今夕是何年)”는 구절이다.

 

지구로부터 평균 38떨어진 달의 시간을 엿보고자 한 물음이다. 그런 달보다 훨씬 더 먼 태양의 시간은 어떨까. 하찮은 광년(光年)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이 그로부터 더 멀리 떨어진 은하계 주변, 은하계 밖의 까마득히 먼 우주의 천체(天體) 시간도 궁금하다.

 

지구의 바깥으로부터 던지는 시점(視點)에서 느껴지는 문학적인 상상이다. 그래서 특별하다는 느낌을 준다. “푸른 하늘의 저 달은 얼마나 오래 떠있었을까(靑天有月來幾時)”로 시작하는 이백(李白)의 시 또한 그런 매력을 던진다.

 

저녁 무렵 바다에서 슬쩍 떠올랐다가, 새벽에 구름 사이로 몰래 사라지는달의 모습을 형용하다가 그는 이렇게 읊는다. “지금 사람은 옛 달을 본 적이 없지만, 지금 저 달은 옛 사람들을 비췄지(今人不見古時月, 今月曾經照古人).”

 

이어 던지는 시구에 맑은 밤하늘의 달을 보며 품은 감정이 짙게 묻어난다. “옛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흐르는 물과 같을지라도, 함께 쳐다 본 달은 늘 그 자리에 있을 뿐(古人今人若流水, 共看明月皆如此)”이라고 했다.

 

멀리서 바라볼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내가 디디고 선 이 지구라는 행성 말이다. 푸른 한 점이 보이다가 그 마저 사라지는 때도 그야말로 금세 닥친다. 태양계 먼 외곽에서 그렇고, 그를 벗어나면 그나마 보이지도 않는다. 광대무변(廣大無邊)의 우주라는 공간에서는 헤아리기조차 어려워 먼지라고 하기에도 버겁다.

 

그러나 이 땅에서 벌어지는 온갖 애환(哀歡)과 희비(喜悲)의 갈래는 무수하다. 그 속에 푹 파묻히다 맞이하고 보내는 시간은 덧없을 정도로 짧게만 보인다. 눈 한 번 깜빡이는 순간(瞬間)’, 숨 한 번 들였다 내쉬는 일식(一息), 그 둘을 합친 순식간(瞬息間)이 덧없이 빨리 흐르는 세월을 과장스럽게 표현할 때 쓸 수 있는 말들이다.

 

시간은 그렇게 쏜살 같이 날아가 사라진다. 광음사전(光陰似箭)이다. 조그만 문틈으로 휙 지나가는 하얀 망아지, 백구과극(白駒過隙)도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물처럼 흘러 지나가는 세월이라고 해서 유년(流年), 유광(流光)이라는 말도 쓴다.

 

한 해 저무는 무렵, 이 세시(歲時)에는 늘 분주하다. 각종 모임에 휩쓸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끔 저문 하늘을 쳐다보자. 도심의 상공에 달이라도 뜨면 좋다. 잘 보이지 않더라도 별을 헤아리면 좋다. 변하지 않는 것에 비춘 유한한 내 자리를 생각하며 삶의 여유를 우리 모두 함께 떠올려야 할 때다.



출처: https://hanjoong.tistory.com/entry/한자-그물로-중국어-잡기-182-세시歲時?category=662101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