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운 겨울은 다른 계절에 비해 바깥출입이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
방 안에서 오랜 날을 보내다 보면, 따분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겨울날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그 답을 알려 줄 것이다.
친구에게 묻다(問劉十九)
綠螘新醅酒(녹의신배주) 새로 빚은 술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紅泥小火爐(홍니소화로) 작은 화로는 빨갛게 불 피어오르네
晚來天欲雪(만래천욕설) 날은 저물고 하늘엔 눈 내리려 하니
能飲一杯無(능음일배무) 한잔 술 마시지 않고 되겠는가?
시인은 겨우내 방 한쪽에 들여 놓은 술독의 뚜껑을 우연히 열어보았다.
그런데 그 안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모습을 목도하였다.
초록빛을 띤 개미가 우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깜짝 놀라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개미가 아니라 술이 익으면서 내는 거품이었다.
술 익을 때 나는 거품이 마치 초록빛 개미 같다 하여 이 술을 녹의라고 부른다는 것이 새삼 떠오른다.
시인의 방 안에는 술독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조그만 화로도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웬일인지 화로에도 벌레가 보였다.
니(泥)라고 불리는 벌레가 붉은색을 띠고 기어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것은 화로 서에서 붉게 타오른 불이 그렇게 보인 것이다.
어둡고 칙칙한 무채색의 겨울 방 안 모습이 천연색의 두 벌레
즉 초록빛 개미와 붉은 니벌레로 인해 밝고 화려한 모습으로 변신하였다.
때는 마침 해 질 녘인데, 날이 춥고 흐린 것이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듯하였다.
술은 익고, 화로는 타오르고, 해는 지려 하고, 눈은 내리려고 하고,
이러한 분위기에 시인은 더 이상 방 안에서 혼자 무료하게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럴 때 가장 떠오르는 것은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일 것이다.
시인은 유십구(劉十九)라는 친구를 청하여 벌겋게 타오른 화롯가에서 갓 익은 술을 함께 마시며,
해 질 녘 눈을 구경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겨울을 방 안에 틀어박혀 외롭게 나는 시인의 모습과 술,
화로, 눈 등의 겨울 정취가 기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바깥출입이 어려운 겨울은 방 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사람은 외롭고 따분해지기 십상이다.
이럴 때 탈출구는 역시 술과 친구이다.
그것도 겨울 분위기를 물씬 살려주는 따뜻한 화로,
해 질 녘 창밖으로 보이는 눈발이 있다면, 겨울은 더 이상 기피 대상이 아니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