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신년특집 - 辛丑年, 소를 말하다] 일만 하는 시시한 삶 같았지만 발잔등 부어도 말없이 물만 마셔 노고 끝 함께 적막 견뎌내는 존재
소설가 윤성희
입력2021.01.01 03:00
/일러스트=이철원
어렸을 때 나는 띠가 열두 개밖에 안 되는 게 불만이었다. 세상에는 동물들이 그리 많은데 겨우 열두 개라니. 공작띠, 홍학띠, 독수리띠…는 왜 안 되는가. 소풍으로 동물원을 가면 나는 띠가 서른 개쯤 되는 세상을 상상해보며 구경을 하곤 했다. 그러면 세상은 더 즐겁고, 더 왁자지껄하고, 더 복작복작해질 것만 같았다. 그중에서 내가 되고 싶은 띠는 기린띠였다. 기린이 걷는 걸 보면 우아하다는 게 뭔지 알 것만 같았다. 나는 기린이 기다란 목을 어떻게 하고 잠이 들지 궁금해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소띠라니. 소라면 궁금한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흔하고 흔해 빠져서 신비로운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소설가 윤성희
나는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쥐띠들과 같이 학교를 다녔다. 그때 쥐띠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이거였다. 열두 동물이 달리기를 해서 띠 순서를 정하는데 쥐가 소 등에 앉아서 왔다는 이야기. 그렇게 결승전까지 몰래 소 등에 올라탔다가 결승선 앞에서 폴짝. 그래서 1등을 했다는 이야기들을 쥐띠 친구들은 종종 말하곤 했다. 그 에피소드는 쥐의 영리함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소의 둔함에 관한 이야기로 들렸다. 바보 같은 소. 미련한 소. 등에 누가 앉아 있는 것도 모르고 달리기만 하다니. 그렇게 1등을 빼앗기고도 우직하다는 칭찬에 속고 있는 소. 어린 시절, 나는 그 에피소드가 먼 미래의 내 운명 같아서 싫었다. 한여름에도 일만 하는 소. 그렇게 일을 하고도 풀만 먹는 소. 단지 띠일 뿐이지만 나는 내가 소인 것처럼 억울했다. 외갓집에는 외양간이 있었다. 마루에서 외양간이 마주 보였는데, 그래서 마루에 누워서 외양간 쪽을 보면 어쩌다 소와 눈이 마주치곤 했다. 나는 소의 그렁그렁한 눈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으이구, 바보 같은 놈. 일하기 싫다고 화를 내란 말이야. 착하게 살지 말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