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겨울밤은 길고 길다. 걱정거리가 많아 잠 못 드는 사람에게,
긴 밤은 통과하기 힘든 인고(忍苦)의 터널이다.
걱정거리가 어떤 것이든 다 고통스럽기 마련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간절히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는 일일 것이다.
어디서 무얼 하는지, 언제 돌아올지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는
상황에서 막연히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겪어보지 않고는
그 고통을 상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리운 마음과, 행여나 낯선 곳에서 고생이나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에 대한 초조함이 합쳐져서 그야말로 잠 못 드는 밤이 되고 만다.
이런 때 가장 요긴한 것이 있으니, 바로 꿈이다.
잠이 들어야 꿈도 꾸는 법이니,
긴 밤 내내 잠 못 들다 새벽녘 얼핏 잠든 사이 꿈이라도 꿀 수 있다면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조선(朝鮮)의 시인 이옥봉(李玉峰)은 이런 꿈을 자주 꾸었던 듯하다.
스스로 짓다(自述)
近來安否問何如(근래안부문하여) : 요즘의 안부를 묻사오니 어떠하온지요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 달빛 비단 창 들어오면, 한이 많아져요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 꿈속의 혼백이 걸어서 흔적 남았다면
門前石路便成沙(문전석로편성사) : 문 앞 돌길이 곧 모래가 다 되었겠지요
시의 주인공은 젊은 여성으로,
멀리 떠나서 소식이 끊긴 정인(情人)의 안부가 무척이나 궁금하지만,
어디도 물을 곳이 없다. 그저 자신에게 묻고 스스로가 답하고 할 뿐이었다.
이런 주인공에게 겨울밤은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특히 달빛이 비단 휘장 두른 창으로 들어올라치면,
주인공의 한은 걷잡을 수 없이 많아졌다.
情人이 집을 떠난 지 한참 되었지만,
주인공의 방은 여전히 정인(情人)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던 때의 모습
그대로 창문에 로맨틱한 비단 휘장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사이로 찾아온 달빛도 정인(情人)과 함께 보던 그 달빛이었다.
비단 휘장도 달빛도 자신도 다 그대로지만,
유독 정인(情人)만 어디론가 떠나서 보이지 않으니,
이런 밤이면 그에 대한 그리운 정이 더욱 간절하였다.
그때마다 꿈을 꾸었고, 꿈속에서 정인(情人)이 계신 집을 찾아가곤 하였다.
어찌나 자주 갔던지 그 집 대문 앞 돌길이 닳고 닳아 모래가 됐다니,
이 과장된 표현이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길고 긴 겨울밤 그리움과 걱정에 잠 못 드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힘껏 잠을 잘 일이다.
그래야만 꿈을 꿀 수 있고,
꿈을 꾸어야 정인(情人)을 찾아갈 수 있다. 문밖 돌길이 다 부수어져 모래가 되도록 말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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