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가난하지만 구차하지 않고(貧而不諂) 부자지만 교만하지 않다(富而不驕).
굳이 공자(孔子)의 말이 아니더라도, 참으로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사람이 가난하면 아무래도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적어도 평범한 사람들은 그렇다.
가난에 구애받지 않고 당당하고 나아가 그것을 즐기기까지 하는 삶의 태도는 훌륭하지만,
견지하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부자가 되면, 돈 없는 사람을 업신여기기 쉽고, 자신이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마치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듯이 착각하기 쉽다.
그래서 돈 많고 교만하지 않기 또한 보통 사람이 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거나 모두가 돈에 구속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특히 가난하면서도 돈에 구애받지 않기가 더 어려울 텐데,
이 때 요긴한 것이 바로 풍류(風流)라는 것이다.
조선의 삿갓 시인 김병연(金炳淵)은 가난과 풍류(風流)의 절묘한 조화를 시로 읊고 있다.
◈ 네 다리 솔 소반(四脚松盤)
四脚松盤粥一器(사각송반죽일기) : 사각 솔소반에 죽 한 그릇 안에
天光雲影共徘徊(천광운영공배회) : 해와 구름 그림자 떠 아른거리네.
主人莫道無顔色(주인막도무안색) : 주인은 조금도 미안해 마시게
吾愛靑山倒水來(오애청산도수래) : 나는 청산이 거꾸로 비친 물을 좋아한다네.
※ 풍류(風流)의 두 가지 요소는 불구속(不拘束)과 멋이고,
풍류(風流)에 수반되는 것은 술과 음악이다.
가난하든 부자든 돈에 구애받지 않고 멋을 추구하는 것 또한 풍류라고 할 수 있다.
평생을 방랑으로 보낸 시인이 어느 날 가난한 농가에 들러 밥 한 끼를 얻어먹는데,
집 주인이 가난하여 지나치게 소략한 음식을
내 놓을 수밖에 없어 민망해 하는 모습을 보고 이 시를 지은 것이다.
워낙 가난한 집인지라 제대로 된 밥상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소나무 등걸을 주워다가 밑에 다리를 네 개 붙여놓은 게 고작이다.
이것을 사각송반(四脚松盤)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인 것은
주인의 민망함을 멋지게 없애고자 한 것이다. 민망한 것은 밥상만이 아니었다.
밥상에 올릴 것이 달랑 한 그릇, 그것도 밥이 아니고 죽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어덯게 하면 주인의 민망함을 덜어주고 멋지게 승화시킬 수 있을까?
\단순한 언어유희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돈에 구애받지 않는 풍류의식의 발현이 이 장면에서는 최고의 무기가 된다.
죽에도 묽기에 따라 등급이 있을 수 있는데, 이 집에서 낸 죽은 어찌나 묽던지,
그냥 아무 건더기도 없는 맑은 물 같은 지경이었다. 참 아픈 장면이지만,
시인은 여기에 풍류의 옷을 멋지게 입히었다.
맑은 물이나 다름없는 죽 속에 하늘의 해와 구름 그림자가 선명하게 비치어,
함께 배회한다고 한 순간, 보잘 것 없는 묽디묽은 죽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멋진 성찬으로 탈바꿈한다.
시인은 주인에게 무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진심으로 위로한다.
청산이 물속에 거꾸로 매달린 모습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말이다.
물론 여기의 물은 죽임은 말할 것도 없다.
다시 한 번 초라한 묽은 죽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음식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초라한 죽을 성찬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다름 아닌 풍류의 힘이었다.
가난은 죄도 아니거니와 부끄러워 할 일도 아니다.
가난하지만 순박한 집 주인의 민망한 마음을 풍류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해서
달랜 김삿갓은 과연 풍류의 달인으로 손색이 없다.
'김태봉의 漢詩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엽과 비타민 (0) | 2021.01.03 |
---|---|
가을의 흥취 (0) | 2021.01.03 |
백발은 아름다워 (0) | 2021.01.03 |
초겨울과 서리 (0) | 2021.01.03 |
첫눈 내린 겨울 저녁 (0) | 2021.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