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278] 충청 中和論
조용헌 교수
칼럼 소재를 어떻게 구하느냐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심심찮게 받는다. 대답은 “강호와 강단입니다.” 강단은 논문과 학술 서적이고 강호는 현장 답사와 특이한 인물 인터뷰다. 강단 재료에만 치중하다 보면 야성이 부족한 책상물림의 글이 된다. 재미가 없다. 반대로 강호에만 치중하다 보면 원리적 근거가 약해져서 가설항담(街說巷談) 수준에 머무를 위험이 있다.
엊그제 충청 유교의 특징을 설파한 송인창(75·대전대 명예교수) 선생의 논문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오는 대목이 있었다. 요약하면 ‘충청 중화론’이다. 충청도는 ‘토(土)’에 해당한다는 이야기이다. 음양오행에서 토는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중간에 충청도가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토의 특징은 목, 화, 금, 수를 모두 포용하는 성징을 지니고 있다. 인체의 위장이 바로 토다. 육식, 채식, 커피, 보이차, 위스키, 막걸리를 모두 포용한다.
반면에 토는 속이 깊다. 자기 속내를 좀처럼 잘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여론조사가 가장 들어맞지 않는 지역이 충청도 대전이라고 들었다. ‘냅둬유, 알았시유’는 자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충청도 특유의 어법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의 화법이라 하겠다. 충청도가 지닌 이러한 중화적(中和的) 기질을 잘 드러내는 인물이 동춘당(同春堂) 송준길(1606~1672)이다. 그의 호 동춘당은 ‘여물동춘(與物同春)’에서 유래하였다. 만물과 더불어 봄을 함께한다는 의미이다.
노론의 스승이자 기호 예학의 종장인 사계 김장생에게 배웠지만 장인은 경상도 예학의 좌장인 우복 정경세였다. 동춘당은 장가간 이후로 장인 정경세를 통해서 영남 퇴계학파의 학풍도 깊이 접속했던 것 같다. 동춘당이 평생 닮고 싶어 했던 인물이 율곡이 아니라 퇴계 선생이었으니까 말이다.
토를 보강해주는 것이 화생토(火生土)의 화(火)이고, 이 화는 예(禮)에 해당한다. 충청도의 예학은 동춘당이다. 그런가 하면 토는 금을 낳는다. 토생금(土生金)이다. 금은 직(直)을 상징한다. 직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이 우암 송시열이다. 직(直)은 칼이기도 하다. 조선 당쟁에서 최고 검객은 우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암 칼날에 영남 남인의 목이 많이 날아갔다.
충청도는 영호남의 가운데인 토에 있으면서도 한쪽에는 예(禮)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직(直)이 있다. 좌파와 우파의 갈등도 따지고 보면 영호남 갈등인데, 이 가운데서 충청도가 중심을 잡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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