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권하는 사회다. 소설가 현진건이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했다오”라고 썼던 것처럼. 주식 시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내적·외적 압력을 느낀다. 그렇지 않으면 뒤처진 것 같다. 군대 있는 아들도 주식에 관심을 보인다. 작년만 해도 군 생활 힘들단 말이 많았는데 얼마 전엔 삼성전자·셀트리온을 묻는다. 주식에 투자하는 어린이, 주린이란 신조어까지 나오는 데 군인이라고 이상할 것도 없다.
선거앞 공매도 금지연장 압박 이익공유제도 정치슬로건 냄새 선심 정책은 사실상 돈 선거
주말에 서점에 갔더니 기업가치·기술적 분석에서 초보자를 위한 가이드까지 다양한 종류의 주식 책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주가급등 사유없음』이란 제목 앞에선 웃음이 나왔다. 묻지마 투자를 떠올리게 한다. 아주머니가 장바구니 들고 객장에 나타나면 주가가 정점이란 얘기가 있다. 어린이까지 등장했으니 정점인 거 같은데, 실제 주가 움직임은 누가 알겠는가.
돈의 힘은 강력하다. 사람 마음을 잡는데 돈만 한 게 없다. 귀신도 부릴 수 있다 하지 않는가. 돈을 주면 좋고, 돈을 잃지 않게 해줘도 좋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건데, 배 아프지 않게 만들어 줘도 좋다. 유권자의 마음을 잡아야 하는 정치인에게 이건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특히 선거가 앞에 있다면.
개인투자자는 공매도가 싫다. 돈을 잃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특히 빚으로 투자한 사람은 더 그렇다. 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서 파는 것이니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지금 증시엔 빚으로 투자하는 사람이 역대 최대 규모다. 오죽하면 증권사가 돈을 그만 빌려준다 할까. 공매도가 주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과거 두 차례(2009년, 2011년) 금지 후 재개 사례를 봤을 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거품 제거 같은 공매도의 순기능도 꽤 된다. 정치권의 시장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목소리가 나오지만, 여권은 들은 체하지 않는다.
서울·부산 시장을 비롯한 재·보궐 선거가 4월에 있다. 공매도 재개로 만일 주가가 내려가면, 선거 때 그 원망을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데 그걸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거다. 개미로 불리던 개인투자자가 ‘동학 개미’로 업그레이드된 상황에서 그들이 돈을 잃게 할 수는 없다. 지역구 의원을 중심으로 공매도 금지 연장이 나오더니 정세균 총리까지 나서 힘을 싣고 있다. 연일 금융당국을 압박한다.
서소문 포럼 1/21
금융당국은 ‘코로나19로 인한 한시적 공매도 금지조치는 3월 15일 종료될 예정’이라는 종료에 방점을 둔 문자를 기자들에 보냈다가(11일) 다음 날 고위당국자 입을 빌려 ‘결정된 거 없다’고 슬쩍 물러선다. 기관투자자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손 본 후에 재개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틀린 말은 아니나 핑계로 들린다. 공매도의 순기능·역기능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거다. 관련 보고서도 꽤 된다. 근데 이 시점에 제도개선 때문에 공매도 금지 연장을 말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선거가 아니면 설명이 잘 안 된다.
이익공유제도 공매도 연장 금지와 궤를 같이한다. 정치적 슬로건 냄새가 짙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목소리를 높인다. 여당은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조만간 이익공유 프로그램을 만들 거라 한다. 쉽게 말해 코로나19로 돈 많이 번 기업의 이익을 돈 못 번 회사와 나누자는 건데, 말은 좋지만, 실행은 만만찮다. 처음 나온 것도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 때인 2011년 동반성장위원회가 내놓은 초과이익공유제, 박근혜 대통령 때인 2015년 무역이득공유제와 큰 틀에서 차이가 없다. 사실상 실패 판정받은 정책이다. 재계에선 이익 산정의 어려움, 성장 동력 약화 등을 들어 안된다 해도 여당은 들은 척하지 않는다. 민간의 자발적 참여라고 하지만, 기업 입장선 강제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주가꿈비율(PDR)이란 신종 지표가 있다.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같은 기존 지표로는 해석이 어려운 주가 움직임을 설명할 때 쓰인다. 인터넷·게임처럼 코로나19로 이익을 본 기업 가운데 PDR이 좋은 곳이 꽤 된다. 주가꿈비율이 좋은 기업에 투자하면서 재산 증식의 꿈을 키웠는데, 이익공유제로 개미의 꿈이 허공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
시장과 정부 역할의 균형점이 어디냐는 오랜 논쟁거리고, 정권의 성격에 따라 그 지점이 달라진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여당은 선거와 관계없는 거라 하지만,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봉투에 현찰 넣어 몰래 주는 것만이 돈 선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