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호돌이’만큼 1988년을 잊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드라마 ‘인간시장’이다. 그해 한 방송사에서 한 이 드라마를 보려고 월요일 저녁마다 밥상을 물리고 온가족이 TV 앞에 모여 앉았다. 불의에 맞서는 주인공 ‘장총찬’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드라마의 원작자는 김홍신(74)씨다. 동명의 원작 소설이 나온 것이 1981년. 서슬 퍼렇던 계엄 하에서 주인공 이름을 ‘권총찬’으로 붙였다가 검열에 걸려 장 씨로 성을 바꿔냈다. 책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대한민국 최초 밀리언셀러란 수식어가 붙었다. 소설을 쓰며 시민운동을 하던 그의 가슴팍에 국회의원 금배지가 달린 것도 이 영향이 컸다.
그에게 ‘공업용 미싱’이란 ‘연관 검색어’가 생긴 건 단 하나의 사건 때문이다. 지난 1998년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던 그는 “김대중 대통령이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한 만큼 입을 꿰맨다는 염라대왕이 공업용 미싱으로 박아야 할 것”이라고 독설을 날렸다. 발언은 일파만파. 당시 김 대통령은 정작 “며칠동안 입이 자꾸 이상했다”며 농으로 받았지만 분위기는 험악하게 굴러갔다. 경남 사천의 한 철물점 주인이 “김 의원에게 주겠다”며 공업용 미싱을 차에 싣고 상경했다. 설상가상 검찰에서 구속 이야기까지 나오자 김 의원의 친구인 가수 조영남 씨마저 등판했다. 그는 당시 이런 사과문을 대신 썼다. “다행히 불구속 처리로 끝나는 분위기라 하니 한숨이 놓였습니다. 친구가 감옥에 들어가있으면 그래도 한 번쯤은 면회를 가줘야 하는데 그게 얼마나 귀찮은 일입니까. 그래도 저는 제 친구가 자랑스럽습니다. 의정활동 하나는 폼 나게 잘했거든요.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만일 다음 번에도 그따위 어설픈 소리를 해댈 때는 제가 그땐 미싱이 아닌 뜨개질바늘로(더 아파야 하니까) 녀석의 입을 꿰매놓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정치권에서 일종의 금기어였던 ‘공업용 미싱’이 부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자회견 다음 날인 지난 19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현직 대통령은 시간이 지나면 전직 대통령이 된다. 전직 대통령이 되면 본인이 사면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자, 발끈한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이 이튿날 “공업용 미싱을 선물로 보낸다”고 되받으면서다. 기왕 터진 설전에 참전한다. 단언컨대, 미싱은 죄가 없다. 김현예 내셔널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