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 논설위원
“떠받듦을 당하고도 망가지지 않은 사람은 다니엘뿐이다(The only man who wasn’t spoilt by being lionized was Daniel).” 영국의 연극 연출가 겸 배우 비어봄 트리(1853~1917)의 유머는 100년 뒤에도 유통기한이 남아 있다. 설명이 필요한 영국식 유머의 키워드는 ‘라이어나이즈(lionize·떠받들다)’와 ‘다니엘’이다. 전자는 동물의 왕 사자(lion)처럼 대우한다는 뜻의 파생동사이고, 후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예언자다. 다니엘은 모함을 받아 ‘사자굴에 던져졌다가’ 신의 은총으로 살아남는다. 사자를 매개로 함축된 메시지는 이거다. ‘떠받듦을 받는(lionized) 지도자는 인격적으로 온전하기가 사자굴에서 살아남기만큼 어렵다.’
영국의 실험 심리학자 스튜어트 서덜랜드(1928~1998)는 『비합리성의 심리학(Irrationality)』이라는 책에서 “조직의 우두머리는 위험하다”면서 트리의 유머를 인용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총리, 기업의 사장, 대학교수 등 조직의 우두머리는 “비판 결여를 감내해야 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구성원들은 집단의 시각에 위배되는 정보를 다른 구성원들에게 감추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길에 “대학입시 제도 전반을 재검토해달라”고 주문했다는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의 브리핑에서 그 ‘위험’이 감지된다. 20일 넘게 나라를 뒤흔든 공직 후보자의 ‘내로남불’에 대한 비판적 고민이 ‘결여’됐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대통령의 상황 인식이 달나라에 가 있다”는 야당 논평(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설득력이 있다. 5년 전, 세월호의 마지막 카톡이 전송된 지 7시간 만에 재난대책본부를 찾아와 “구명조끼…” 운운했던 전직 대통령이 떠올라 난감하다.
김승현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분수대] 사자굴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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