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감춰진 그리움[이준식의 한시 한 수]〈104〉

bindol 2021. 4. 16. 08:28

 

贈隣女

羞日遮羅袖 수일차라수
愁春懶起妝 수춘라기장
易求無價寶 역구무가보
難得有心郎 난득유심랑
枕上潛垂淚 침상잠수루
花間暗斷腸 화간암단장
自能窺宋玉 자능규송옥
何必恨王昌 하필한왕창

 

해님 부끄러워 소매로 얼굴 가리고

봄날 시름겨워 화장도 마다하네
진귀한 보물은 쉽게 구해도

낭군 마음 얻기는 너무 어려워
베갯머리 가만히 눈물 흘리고

꽃밭에서 남몰래 애를 태우네.

송옥같이 멋진 남자도 넘볼 수 있는 그대

떠나버린 왕창을 원망할 건 없잖아

 

―‘이웃 여자에게(증인녀·贈隣女)’ 어현기(魚玄機·약 844∼871)

 

무엇이 부끄러워 얼굴 가리며 왜 화장조차 게을리하면서 자신을 학대하는가. 종잡을 수 없는 낭군의 마음은 원래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란다. 그저 무심할 뿐인 보물을 구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지. 그러니 그대여, 남자 때문에 앙앙불락 속 태울 건 없다네. 세상에 남자가 어디 그대를 외면한 왕창뿐인가. 송옥같이 멋진 남자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사랑앓이로 힘들어하는 이웃 여자에게 시인은 당당한 도전을 권유한다. 어투는 천연덕스레 위로를 건네는 듯하지만 기실 사연의 주인공은 시인 자신이다. 시의 또 다른 제목이 ‘이억(李億)에게 보낸다’인 점이 그 증거다. 이억은 시인을 첩으로 받아들여 애지중지하다 부인의 반대가 심해지면서 돌아선 인물. 짐짓 시인은 남자에게 애걸복걸 않으리라 다짐하는 듯싶지만 도무지 초연해질 수 없는 처지가 스스로도 안타깝기만 하다. 떠난 상대를 원망하지 말자는 넋두리는 그간의 눈물과 상심에 서린 절절한 그리움을 역설적으로 반증한다.

송옥과 왕창은 각각 전국 시대, 위진 시대의 인물로 미남의 대명사로 통용될 뿐 시에서처럼 여심을 배신하여 원망을 산 것과는 무관하다. 어현기는 당대 유명 인사들과 자주 시를 주고받을 만큼 뛰어났지만 남자 문제로 평탄하지 못한 삶을 살다 스물여섯에 죽임을 당한 비운의 여인이기도 하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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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隣女 (증린녀 - 이웃 여인에게)
魚玄機 (어현기, 字는 幼微(유미 ; 만당(晩唐)의 여류시인). 唐 843 ?~868 ?)

羞日遮羅袖 (수일차라수)
남들 보기 부끄러워 소매로 얼굴을 가려 다니고
愁春懶起妝 (수춘라기장)
시름겨운 봄 날엔 화장하기도 귀찮아지지
易求無價寶 (역구무가보)
값 매길 수 없는 보물은 차라리 구하기 쉽고
難得有心郎 (난득유심랑)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임 얻기가 오히려 어렵다네
枕上潛垂淚 (침상잠수루)
베겟머리를 눈물로 적시고
花間暗斷腸 (화간암단장)
꽃 그늘에 몰래 숨어 애간장을 태우기도 했었네
自能窺宋玉 (자능규송옥)
내 스스로 임을 담장 틈새로 훔쳐볼 수라도 있었으니
何必恨王昌 (하필한왕창)
어찌 처음으로 마음 준 그대를 탓하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