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정용진의 ‘미안하다, 고맙다’
kim-taehoon 기자페이지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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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에서 가장 입이 화제인 기업 오너는 일론 머스크일 것이다. 전기차 테슬라 성공으로 주목받았지만, 잇단 가상 화폐 관련 실언에 사기꾼으로 몰렸다. 머스크가 왜 이러는지 아무도 모른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제발 그 입 좀 다물라”고 통사정한다. 우리 기업 오너들도 숱한 말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기억에 남는 어록엔 비난보다 대중의 공감을 산 말이 많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말을 남겼다. LG그룹 구인회 창업주는 “한번 사람을 믿으면 모두 맡기라”고 했다. 현대그룹 정주영 전 회장의 “이봐, 해봤어?”는 인생 지침으로도 손색없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말과 생각을 퍼뜨리는 사람을 ‘인플루언서’라고 한다. 요즘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이 인플루언서 강자로 부상했다.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65만명을 넘는다. 6일 오후 현재 게시물이 32개뿐인데, 댓글은 900개를 넘고 ‘좋아요’는 1만7600개에 이른다. 댓글에 정 부회장이 직접 ‘대댓글’을 단다고 해서 ‘공답 요정’이란 별명도 얻었다. ‘공개 답변을 하는 요정’이란 뜻이다.
▶정 부회장은 레이디 가가나 방탄소년단처럼 소셜미디어를 홍보에 영리하게 활용한다는 평가도 있다. 신세계 조선호텔이나 신세계푸드가 개발한 요리 사진을 올릴 때마다 완판 기록을 쓴다. 최근엔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과 글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우럭찜에 이어 엊그제 해물 요리 사진을 올리며 한글과 영어로 ‘미안하다, 고맙다’고 썼다.
▶식재료가 된 동물에게 미안하고, 맛있으니 고맙다고 한 게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정 부회장은 이 문장이 지닌 사회적 함의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선 후보 시절, 팽목항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에 찾아가 방명록에 이 문장을 썼다. 정 부회장은 한우 사진에는 “너희들이 우리 입맛을 세웠다”고 쓰기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세월호 분향소에서 “너희들이 대한민국을 다시 세웠다”고 쓴 것의 패러디라는 지적이 나온다.
▶어떤 사람들은 정 부회장이 사회적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해석한다. 기업인의 자유분방한 글에 정치적 의미를 달지 말자는 반론도 있다. 정 부회장의 속뜻을 알 도리는 없다. 다만 문 대통령의 ‘미안하다, 고맙다' 방명록 이후 많은 사람이 이 표현을 접할 때마다 그날의 불행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하거나 대통령이 ‘고맙다’고 한 것에 분노한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에서 “사람은 비수를 손이 아닌 말 속에 숨길 수 있다”고 했다. 65만 팔로어를 거느린 인플루언서의 말이 연일 화제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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