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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이젠 알았을까, 미국의 중요성[출처: 중앙일보]

bindol 2021. 6. 9. 04:29

채병건 국제외교안보 디렉터

 

한·미 관계에서 이견 노출을 숨기지 않았던 정부 여당이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크게 호평하고 홍보하며 국정 성과로 자부하는 건 아이러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나라’, ‘미국 대사가 조선 총독인가’라는 주장을 정부와 여당 인사가 서슴지 않았는데 이번엔 중국을 자극할 수도 있는 ‘대만 해협’을 명기한 공동성명이 나왔는데도 여권이 극찬했다. “안보와 경제에서 대단한 성과”로 알렸다.
 

대미 외교로 중도층 유인해
미국, 남북관계의 키 쥐고 있어
지정학 한계 보완, 중국도 견제
친미 외교 운운하는 건 무가치

 

물론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은 그간 흔들렸던 한·미 관계를 다시 정상 궤도로 돌리려는 시도가 명문화됐다는 점에서 잘 된 회담이다. 미·중 현안을 놓고 한국 입장이 어디에 있을 수밖에 없는지 우회적으로 보여줬고, 바이든 행정부가 정권 차원에서 요구해온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를 제공하면서 트럼프 시대엔 쇳소리 마찰음이 튀어나왔던 한·미 관계에 윤활유도 들이부었다. 문재인 정부로선 집권 5년차를 맞아 대미 외교의 성과를 바탕으로 내치에선 보여주지 못했던 안정적 국정 운영 능력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를 통해 흔들리던 외곽 지지층과 중도층에 ‘구관이 명관’ 임을 호소할 사례를 만들었다.
 
정부 여당으로선 또 이같은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가 가뭄에 단비다. 다른 분야에선 ‘집토끼 정권’의 한계를 벗어날 계기가 쉽게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가 평안하려면 경제가 잘 돌아가야 하는데, 경제의 핵심인 고용에선 ‘취업’이라는 얘기만 들어도 모두가 우울해진다. 방역에서 성과를 냈으면 ‘K-방역’ 네이밍에 안주하지 말고 곧바로 백신 확보에 나서 길거리 경기를 되살려 자영업자와 영세상인의 삶을 최대한 빨리 일상에 근접시켜야 했는데 정부는 안이했다.
 
무엇보다도 지금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탄핵 집권’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정치는 ‘우리가 만들 나라’를 보여줘 지지층을 결집하고 산토끼를 끌어오는 게 상식인데, 이 정부는 ‘우리가 만들 나라를 방해하는 세력’을 지목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데 익숙하다. 그래서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찾아내야 지지층이 들썩거리고, 찾지 못하면 지지율이 정체되는 기이한 리더십을 보여준다.
 

서소문 포럼 6/9

 

이런 상황에서 여당이 재집권에 성공하기 위한 열쇠는 대내적으론 코로나19 극복이다. 여권으로선 ‘마스크를 벗고 투표할 수 있게 됐다’를 내년 대선 때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동시에 대외적으론 미국이 숨은 키를 쥐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주한미군과 함께 하는 한국군 장병’에게 백신을 제공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여권이 운을 띄웠던 ‘백신 스와프’의 실패를 만회한다. 한·미 관계 안정화는 문재인 정부 충성층 바깥의 관망층을 다시 유인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다.
 
미국이 키를 쥔 두 번째 이유는 남북 관계에도 있다. 바이든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요구한 대로 대북인권특사에 앞서 대북특별대표를 임명했다. 이를 통해 정부는 ‘한국이 여전히 북·미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메시지를 북측에 전한 게 됐다. 정부는 또 집권 초반에 보여줬던 화려했던 남북 관계의 해빙을 대선을 앞둔 임기 말 다시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러려면 미국이 대북 제재 대폭 완화라는 선물을 쥐어줘야 가능하다. 미국이 실제로 그렇게 할지는 논외로 하고, 김정은 서울 방문의 필수 조건이 대북제재 대폭 완화라는 건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선 상식이다.
 
그러니 지금 ‘정권 재창출’이 최고의 과제인 문재인 정부가 국정 성과 굳히기를 시도하면서 한·미 관계를 챙기는 건 당연하다. 문재인 정부뿐 아니라 앞선 정부들도 그러했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가치는 그간 중국이라는 대국을 항상 의식해야 했던 지정학적 한계를 보완할 중국 견제 세력이 배후에 나타났다는 점에 있다. 인구와 생산력에서 막강한 통일 중국을 상대해야 하는 게 지정학적 숙명이었는데 땅과 바다를 놓고 한반도와 다투지 않는 먼 곳의 세력이 신흥 강국으로 등장한 자체가 우리에겐 새로운 카드였다. 미국을 끌어들여 중국의 압박을 완화해 결과적으로 한국의 발언권을 높이고 국익을 확장하는 외교를 할 국면이 만들어졌다. 지금은 전통의 강자 중국을 능가하는 신흥 강자 미국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두번째 명·청 교체기나 다름없다. 한국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건 이 구조는 당분간 바뀌지 않는다. 보수건 진보건 미국은 우리 입장에선 꽤 괜찮은 카드라는 게 본질이다. 이런 전제에서 구사하는 외교를 친미니 뭐니 운운하며 비판한다면 상대할 가치가 없다. 이 정부의 브레인들이 지금이라도 이를 깨달았을까.
 
채병건 국제외교안보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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