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청빈한 선비의 노래[이준식의 한시 한 수]<115>

bindol 2021. 7. 2. 05:05

衡門  /  詩經 陳風

 

衡門之下 可以棲遲 泌之洋洋 可以樂飢
횡문지하 가이서지 비지양양 가이낙기  
豈其食魚 必河之魴 豈其取妻 必齊之姜
기기식어 필하지방 기기취처 필제지강
豈其食魚 必河之鯉 豈其取妻 必宋之子
기기식어 필하지리 기기취처 필송지자  

 

````````````````````````````````````````````````````````````````````````

누추한 집이라도 놀며 쉴 수 있고

졸졸 흐르는 샘물 즐기며 기꺼이 주릴 수 있으리
물고기를 먹는데 왜 꼭 황하 방어라야 하나

아내를 얻는데 왜 꼭 제나라 강씨라야 하나
물고기를 먹는데 왜 꼭 황하 잉어라야 하나

아내를 얻는데 왜 꼭 송나라 자씨라야 하나.

(衡門之下, 可以棲遲. 泌之洋洋, 可以樂飢.

豈其食魚, 必河之방. 豈其取妻, 必齊之姜.

豈其食魚, 必河之鯉. 豈其取妻, 必宋之子.)

―‘누추한 집(형문·衡門)’·시경(詩經)·진풍(陳風)

 

주어진 환경에 자족하자는 선비의 평정심이 돋보이는 노래.

대문이라고 달랑 나무 하나 걸쳐 놓은 누추한 집이지만

얼마든지 편하게 지낼 수 있고 졸졸 흘러나오는 샘물로

허기를 채우지는 못해도 그걸 완상하는 것으로 주림을 감내할 수 있다.

옛 성현이 음식과 남녀관계를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라 치부하긴 했지만

결코 호사로운 식색(食色)을 탐하진 않았을 터.

사람들은 그런데 어쩌자고 황하의 방어나 잉어만을 먹으려 하고,

왜 하필 제나라나 송나라의 귀한 가문의 딸을 배필로 얻으려 하는가.

노래의 근저에는 소박함을 간직하되 작위적인 욕심은 배제하라는 노자의無爲自然

가난한 생활에도 마음을 편히 하고 도를 즐기라는

공자의 안빈낙도(安貧樂道) 사상이 두루 엿보인다.

노자나 공자의 철학에 공감한 어느 선비가 만들었는지,

아니면 이 노래가 먼저 나왔는지는 알 길이 없다.

 

진풍(陳風)은 진나라 민요인데 이 가사는 여느 민요에 비해 사뭇 이질적이다.

원시 농경사회에서 팍팍한 삶을 살았을 필부필부가 과연 이런 식의

인생관을 거리낌 없이 노래할 수 있었을까.

물욕과 사랑에 갈등했던 한 선비가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만들었거나

호사를 탐하는 선비들의 속물근성을 비꼬려 만든 노래일 것이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

[진풍(陳風) 제3편 횡문3장(衡門三章)]

衡門之下ㅣ여 可以棲遲로다 泌之洋洋이여 可以樂飢로다

(횡문지하ㅣ여 가이서지로다 비지양양이여 가이낙기로다 賦也ㅣ라)
횡문 아래여, 가히 써 오래 깃들이로다. 비수의 철철 넘침이여, 가히 써 배고픔을 즐기리로다(잊으리로다).

○賦也ㅣ라 衡門은 橫木爲門也ㅣ니 門之深者에 有阿塾堂宇라 此는 惟衡木爲之라 棲遲는 遊息也ㅣ라 泌는 泉水也ㅣ라 洋洋은 水流貌라 ○此는 隱居自樂而無求者之詞라 言衡門이 雖淺陋나 然이나 亦可以遊息이오 泌水雖不可飽나 然이나 亦可以玩樂而忘飢也ㅣ라

○부라. 횡문은 나무를 가로놓아 문을 만든 것이니 문의 깊은 것에 아숙당우(언덕에 기댄 것처럼 서당과 집을 꾸민 것)가 있음이라. 이것은 나무를 가로놓아서 만든 것이라. 서지는 놀고 쉼이라. 비는 샘물이라. 양양은 물이 흐르는 모양이라. ○이것은 숨어 거처하고 스스로 즐거워하면서 (세상에서) 구하는 것이 없는 자의 말이라. 횡문이 비록 얕고 누추하나 그러나 또한 가히 써 즐거워하면서 쉬고, 비수가 비록 가히 배는 부르지 않으나 그러나 또한 가히 써 구경하고 즐거워하면서 배고픔을 잊음이라.

豈其食魚를 必河之魴이리오 豈其取妻를 必齊之姜이리오

(기기식어를 필하지방이리오 기기취처를 필제지강이리오 賦也ㅣ라)
어찌 고기 먹는 것을 반드시 하수의 방어로 하리오. 어찌 그 아내 취함을 반드시 제나라의 강씨리오.

[해설]
고기를 먹는데 하수의 방어나 잉어가 소고기나 양고기보다 좋다지만 꼭 그 좋은 고기만을 먹을 필요가 있겠는가. 조그마한 물고기도 상관없고, 제나라의 강씨가 인물 좋다고, 꼭 인물 좋은 여자를 골라 장가들 필요가 있겠는가. 마음에 맞는 여자를 취하여 安分知足하며 살면 된다.

○賦也ㅣ라 姜은 齊姓이라

○부라. 강은 제나라 성이라.

豈其食魚를 必河之鯉리오 豈其取妻를 必宋之子ㅣ리오

(기기식어를 필하지리리오 기기취처를 필송지자ㅣ리오 賦也ㅣ라)
어찌 고기 먹음을 반드시 하수의 잉어로 하리오. 어찌 그 아내 취함을 반드시 송나라의 딸로 하리오.

○賦也ㅣ라 子는 宋姓이라 (衡門三章이라)

○부라. 자는 송나라 성이라. (횡문3장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