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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싸이월드’의 귀환

bindol 2021. 7. 6. 05:26

[만물상] ‘싸이월드’의 귀환

강경희 논설위원

 

kang-kyunghee 기자페이지 - 조선일보

 

www.chosun.com

 

'싸이월드'의 귀환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2000년대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싸이월드’가 과거 이용자들이 올린 사진 180억장과 동영상 1억5000만개를 복구해 5일 서비스를 재개하려다 8월로 잠정 연기했다. 싸이월드는 한때 이용자가 3200만명에 육박했고 ‘싸이질’ ‘싸이폐인’ ‘싸이중독’이라는 유행어까지 낳았던 한국형 SNS다. 페이스북보다도 앞선 1세대 토종 SNS였지만 페이스북 등에 밀려 쪼그라들다 급기야 서비스까지 중단됐었다. 서비스 재개 소식에 10~20대 시절 싸이월드에 사진이며 동영상을 업로드해놓은 30~40대들이 반색하고 있다.

 

▶1999년 카이스트 대학원생들이 만든 싸이월드는 ‘미니홈피’ 서비스로 주목받았다. 이용자들이 가상 화폐였던 도토리로 자신만의 가상 공간을 꾸미고, 가까운 친구와 ‘일촌’ 맺기를 하며, 일촌의 일촌과 파도타기를 하면서 다른 미니홈피도 방문하는 인맥 기반 서비스였다. 하지만 운영난에 시달리다 창업자들이 버티지 못하고 2003년 SK커뮤니케이션즈에 매각했다. 한때 하루 도토리 매출이 1억5000만원에 달할 정도로 유료화에도 성공했지만 세계 시장 개척에는 실패했다.

 

▶싸이월드는 모바일로 바뀐 시대 변화에 굼뜨게 대응하면서 인기를 잃어갔고 적자가 누적됐다. 2016년 프리챌 창업자가 인수해 부활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경영난으로 직원들에게 월급도 못 주고 세금도 밀리자 급기야 지난해 국세청에서 싸이월드를 폐업 처리했다. 싸이월드가 페이스북에 초기 투자한 피터 틸처럼 안목있는 벤처투자가를 일찌감치 만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 전 세계인이 페이스북 대신 싸이월드를 이용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05년경 백인 모델이 사과를 와작 베어 문 ‘사과 씹어 먹기' 광고가 뉴욕 등지에 등장했다. 애플에 맞짱 뜨겠다는 MP3 플레이어 ‘아이리버'의 해외 광고였다. 삼성반도체 임원 출신의 양덕준씨가 1999년 창업한 아이리버는 창업 5년 만에 국내 MP3 플레이어 시장의 79%, 해외 시장의 25%를 석권할 만큼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글로벌 음반사들을 규합해 아이튠스라는 네트워크를 만들며 거대한 음원(音源) 생태계를 구축한 애플의 큰 전략에 밀려 결국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신세가 됐다. 한국 IT 산업사의 아쉬운 실패 사례다.

 

▶싸이월드와 아이리버처럼 세계 시장에서 앞서가던 디지털 기업들이 우리에게 있었다. 이들의 성공에 자극받아 많은 젊은이가 IT 분야에 뛰어들었다. 돌아온 싸이월드가 재기에 성공할지는 미지수이지만 과거의 뼈아픈 실패도 한국 디지털 산업의 성장에 큰 자양분이 되었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