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징역 2년’으로 “오빠”가 없어질까
ahn-yonghyun 기자페이지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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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배경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북 주민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조선일보 DB
북한에 처음 상륙한 한류(韓流)는 1990년대 영화 ‘장군의 아들’ 같은 액션물이었다. 보면 바로 이해가 됐다. 고난의 행군 때는 한국 노래 ‘돈 때문에’가 유행했다. “돈이란 무엇이길래 사람을 울리나”는 가사가 북 주민을 울렸다. 단속에 나선 북 당국이 비디오·DVD 플레이어는 놔 두고 DVD(알판)만 압수했다. 맞불을 놓는다며 북 체제 선전용 DVD를 만들어 대량 유포했다. 그런데 두 DVD가 뒤섞이면서 한류 적발이 어려워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김정일에게 ‘대장금’ 등 드라마 DVD를 선물했다. ‘장군님도 보는 것'이라며 북 간부를 중심으로 한국 사극이 확 퍼졌다. 김정일이 만든 영상물 ‘민족과 운명’에는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심수봉씨가 기타 치며 ‘그때 그 사람’을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북 젊은이들이 그걸 따라했다. ‘겨울연가’ 같은 연애물을 보고 남한 말투와 옷차림도 흉내 내기 시작했다. 김정일 애창곡이 ‘사랑의 미로’다. 그런데 2009년 3대 세습을 앞두고 한류를 퍼뜨렸다며 간부를 총살까지 했다. 하지만 이미 둑은 터진 뒤였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이민호씨 얼굴이 찍힌 중국 감자칩은 북 시장에서 웃돈을 줘야 살 수 있었다. 북 여학생들이 ‘우상’ 사진을 앞다퉈 모았기 때문이다. 이씨와 열애설이 불거진 여자 연예인을 때려주려 ‘탈북하자’는 이야기까지 했다고 한다. 한국 걸그룹 춤을 가르쳐주는 ‘사설 학원’도 등장했다. 작년 백두산 답사에 나섰던 20대 북한 군인들이 오락회에서 방탄소년단(BTS) 춤을 췄다가 문제가 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북한군이 ‘BTS 아미(팬 클럽)’가 된 셈이었다.
▶김정은이 작년 12월 ‘반동 사상 문화 배격법’을 제정했다. 한국 식으로 남편을 ‘오빠’라 부르면 징역 2년, 영상물을 유포하면 사형이다. 한류가 위험 수위를 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북한 검사가 압수한 남한 드라마를 밤새 보다가 걸려 탈북하는 지경이다. 북 배경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본 주민들은 진짜 같은 평양역과 유경호텔 등을 보고 한국 기술에 탄복한다고 한다.
▶북한 ‘MZ 세대’는 대량 아사 시기에 태어나거나 유년기를 보냈다. 배급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맹목적 충성심도 약하다. 자기를 키운 건 시장(市場)이라 여긴다. 김정은은 이들의 한국 동경이 반체제로 이어질까 두려워한다. 북은 한류를 “모기장을 2중, 3중으로 쳐서 막겠다”고 했다. 그런데 한류는 모기가 아니라 바람이다. 자유와 민주의 바람이 태풍처럼 북을 휩쓸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반드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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