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한 섬에 있는 두 나라의 명암
jung-jisup 기자페이지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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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 잘루이즈 지역에 있는 빈민촌./AP 연합뉴스
로라 로크맨 미국 국무부 부차관보는 국토안보부 및 연방수사국(FBI) 요원들과 최근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를 찾았다.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암살당한 사건 직후 아이티 정부가 미국에 긴급 지원 요청을 해 급파됐지만, 도착 직후 난감한 상황을 겪었다. 클로드 조제프 임시 총리, 아리엘 앙리 총리 지명자, 조제프 랑베르 상원의장이 서로 자신이 대통령 권한대행이라고 주장해 셋을 모두 만나야 했다. 이 나라의 혼란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25만명이 숨진 2010년 1월 대지진 당시 세계 최빈국 참상이 드러났던 이 나라가 달라진 게 없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아이티도 한때 황금기가 있었다. 아이티는 건국부터 세계사적 의미를 지녔다. 아이티가 위치한 이스파뇰라섬은 1492년 콜럼버스 탐험대의 초창기 개척지로 스페인에 이어 프랑스가 섬 전체를 손에 넣었다. 그러나 섬 서부 흑인 노예들이 혁명을 일으켜 프랑스를 쫓아내고 1804년 독립을 선포하며 해방 노예들이 세운 세계 최초 국가가 됐다. 아이티는 1822년 스페인 후예들이 다수인 섬의 동부까지 점령해 22년 동안 통치했고, 중남미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등 카리브해 강국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러나 동부 지역에 대한 폭정이 독립 투쟁을 불러와 1844년 이스파뇰라섬은 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으로 갈라졌다.
두 나라 모두 외세에 휘둘렸고, 정치적 혼란기를 거쳤지만 지금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도미니카공화국은 경제 발전과 정치 안정을 이루며 카리브해 중심 국가로 도약했지만, 아이티는 세계 최고 수준의 강력 범죄율과 질병 감염률에 허덕이는 최빈곤국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지진 희생자 대다수가 허술하게 지은 무허가 건물 거주자로 드러나자 “도미니카에서 났으면 피해는 미미했을 것”이라는 지적마저 나왔다. 아이티가 이 지경이 된 것은 건국 후부터 이어진 백인 식민 세력의 견제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요인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이 나라 역사엔 자멸(自滅)과 실기(失機) 순간이 너무 많다.
1957~1987년 군부 폭정을 거친 뒤 새 헌법을 제정하고 민주 정부가 들어섰지만, 쿠데타와 정파 대립, 무장 세력의 발호 등 혼란이 반복됐고 2004년부터 6년 동안 유엔군이 주둔했다. 20세기 들어 꾸준히 답지한 국제사회의 원조만 잘 활용했어도, 아니 2010년 대지진 때 몰린 물자와 후원금만 효율적으로 썼어도 상황은 지금보다 나았을 것이다. 아이티 대통령 암살 직후 도미니카공화국은 국경을 걸어 잠그고 난민 대량 유입 등의 비상 상황 대비책 마련에 들어갔다. 두 나라의 명암은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는 지리적 요인이 아니라 위정자들의 능력과 안목임을 보여준다. 한반도에서 분단 뒤 70여 년을 보내면서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된 한국과 북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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