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한자

[유광종의 시사한자] 飜(뒤집을 번) 覆(덮을 복)

bindol 2021. 7. 21. 18:25

[유광종의 시사한자] 飜(뒤집을 번) 覆(덮을 복)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

 

앞의 (번)은 새가 날아오르며 뭔가를 뒤집는 행위와 관련이 있다. 아래를 향해 놓인 사물 등을 위로 향하게 바꿔놓는 동작으로 볼 수 있다. 아예 날아오르는 일을 강조할 때는 飜(번)으로도 적는다.
번역(譯)은 언어를 다른 계통의 말로 옮기는 일이다. 다른 이의 작품을 매만져 제 것으로 만들어 내면 번안(案)이다. 번천(天)은 하늘이 뒤집힐 정도의 큰 변화다. 하늘과 땅이 다 뒤집히면 번천복지(天覆地)다.
뒤의 覆(복)은 그 반대다. 위를 향해 있던 것이 아래를 향해 뒤집히는 모양이다. 순우리말의 ‘엎어지다’ 새김이다. 그릇 등의 뚜껑이나 위에서 아래로 덮는 행위를 일컫는 복개(覆蓋), 기울어서 엎어지다가 패망하는 모양을 경복(傾覆)으로 표현하는 경우를 보면 그렇다.

관련기사

얼굴을 헝겊 등으로 덮는 일이나 그 경우는 복면(覆面)이다. 절연체로 전선 등을 덮어씌우면 피복(被覆)이다. 정상적인 모습이 거꾸로 엎어지면 전복(顚覆)이다. 때로는 ‘다시’를 의미하는 復(복)과 의미가 같다. 복심(覆審)이면 다시 심사하는 일이다.
그러나 아래 위를 따질 겨를도 없이 이 두 글자로 생성한 ‘번복’이라는 단어는 뒤집고 엎는 행위 전반으로 뜻이 그냥 굳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반복(反覆)이라는 단어로도 쓴다. 그냥 뒤집거나 엎어서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이다.

 

“새 둥지가 엎어지는데 그 안에 있는 알이 온전할까요?(覆巢之下, 復有完卵乎)”라는 유명한 어구가 있다. 언설(言舌)이 아주 날카로워 조조(曹操)에게 미움을 사 끝내 죽임을 당한 공융(孔融)의 둘째 아들이 한 말이다. 제 아버지가 권력자 조조에게 붙잡혀 가니 저도 살아남기 힘들다는 뜻에서 뱉은 푸념이다.
뒤집어 헤치거나 갈아서 엎는 일은 때로 필요하다. 그러나 늘 이어지면 불안정성이 너무 높아진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日暮途遠). 게다가 경제가 침체로 향하는 조짐이 뚜렷한 요즘이다. 우리의 ‘둥지’를 조심히 다뤄야 옳은 시점이다. 나라 안팎의 모든 여건이 불안해지는 상황에서 둥지에 담긴 미래의 동력, 새알을 보전하며 키우기 위해서라면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