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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올림픽 4위’ 영웅들

bindol 2021. 8. 9. 04:22

[만물상] ‘올림픽 4위’ 영웅들

김태훈 논설위원

 

김태훈 논설위원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08.09 03:18

 

영국은 올림픽 대회에서 금·은·동을 골고루 획득하는 나라다. 종합 전적 4위에 오른 이번 도쿄 대회에서도 금과 동 각각 22개, 은 21개를 획득했다. 그런 영국조차 ‘가장 안타까운 노메달’이라 불리는 4등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BBC가 4위를 16개나 했던 지난 리우 대회를 거론하면서 ‘4위는 최악의 순위’ ‘황홀과 침통의 갈림길’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높이뛰기 우상혁,다이빙 우하람,배구 김연경/조선일보DB

 

▶ 한국 올림픽 대표팀이 이번 대회 12개 종목에서 ‘안타까운 4위’를 했다. 그리고 4위를 한 선수와 팀에 많은 국민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금메달 숫자로 국가 순위를 정하는 기준에 집착해 은·동메달마저 푸대접했던 과거와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특히 여자 배구는 준결승, 3·4위전에서 거듭 3대0으로 완패했는데도 국민이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세계 랭킹에서 한참 앞서는 강호들을 잇달아 물리치고 4강에 오른 데다 확연한 실력 차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분전하는 모습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노메달이 아니라 다이아몬드 메달”이란 댓글이 달렸다.

 

▶세계의 높은 벽에 막혔던 종목에서도 ‘4위의 영웅’들이 잇달아 탄생했다. 높이뛰기 우상혁의 4등은 한국 신기록을 갈아치운 눈부신 성취다. 마지막 도전에 실패한 뒤 올린 거수경례는 메달 못지않은 감동을 선사했다. 우하람이 등장하기 전 다이빙은 본선도 못 가던 불모지였다. 그런데 우하람이 리우에서 11위로 본선에 진출하더니 이번엔 메달 목전까지 도약했다. 감탄하고 응원하지 않을 수 없는 노메달이다.

 

▶감동적인 드라마도 선보였다. 도미니카와의 경기 중 김연경이 외친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는 이번 대회 최고의 올림픽 어록으로 떠올랐다. 우리 선수끼리 벌인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배한 배드민턴 여자복식의 이소희·신승찬 조와, 근대5종에서 전웅태에 이어 4위를 한 정진화는 메달을 획득한 동료들과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우리 선수들끼리 축하하고 위로하는 현장을 지켜보던 많은 국민도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여자 역도 이선미와 기계체조 류성현의 4위는 좌절이 아닌 다음 대회를 향한 디딤돌이었다.

 

▶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군 면제 기준을 바꾸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한 것도 4위들의 활약 덕분이다. ‘올림픽 동메달 이상,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란 기준으론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 국민에게 선사한 감동을 보상할 수 없다는 취지다. 대회 기간 내내 더위·코로나와 싸우며 메달보다 더한 감동을 국민에게 선사한 영웅들에게 수고했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