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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惡行 중단이 善行? 南北의 희한한 거래

bindol 2021. 8. 12. 04:45

[만물상] 惡行 중단이 善行? 南北의 희한한 거래

안용현 논설위원

 

안용현 논설위원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08.12 03:18

 

북한은 영변 핵 시설을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 때부터 협상 카드로 팔아먹었다. 2008년 CNN 등을 불러 영변 냉각탑을 폭파하는 쇼까지 벌였다. 영변 외 비밀 핵 시설이 수두룩하기 때문에 고철 수준인 영변을 ‘쇼룸’으로 이용한 것이다. 그 영변 시설이 김정은·트럼프 회담 때 또 매물로 나왔다. 안보 문외한이던 트럼프도 영변이 고철인 줄은 알았는지 같은 말[馬]을 두 번 사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영변 전부가 폐기된다면 북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라고 했다. 북은 영변을 또 팔려 할 것이다.

북이 지난달 말 연결한 남북 통신선을 또 차단했다. /조선일보 DB

 

▶2006년 7월 김정일이 미사일 7발을 무더기 발사했다. 그 직후 열린 남북 회담에서 북측 대표가 “선군 정치가 남측 안전을 도모해주고 있다”며 쌀 50만t을 내놓으라고 했다. 그해 10월 북이 1차 핵실험을 하면서 남북 대화도 끊었다. 그러다 2007년 초 장관급 회담에 다시 나와 쌀과 비료를 달라고 했다. 북은 대남 도발을 한 뒤 그걸 중단하는 게 시혜라도 되는 양 대가를 요구하곤 했다.

 

▶김정은도 그랬다. 2017년 수소탄과 ICBM 발사에 성공한 뒤 이듬해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참가 뜻을 밝혔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올림픽 기간 한미 훈련을 연기하며 환영했다. 김정은이 작년 열병식에서 ‘괴물’이라는 세계 최대의 ICBM을 공개하며 “북과 남이 다시 손잡는 날이 찾아오길 기원한다”고 했다. 이때도 청와대는 “남북 관계 복원하자는 북 입장에 주목한다”고 했다. 미국은 “북한의 악행에 보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는데 우리 햇볕 정권은 북이 악행을 벌였다가 중단하면 선행으로 떠받든다.

 

일러스트=김도원

 

▶1972년 개통된 남북 통신선을 북이 처음 끊은 건 1976년 도끼 만행 사건 때였다. 이후 필요에 따라 통신선을 6차례 이상 열었다 차단하길 반복했다. 2016년 4차 핵 실험으로 개성공단이 닫히자 통신선을 차단해놓고 평창올림픽에 간다며 다시 연결했다. 작년 6월엔 대북 전단 살포를 이유로 통신선을 차단해 ‘전단 금지법’을 얻어내기도 했다.

 

▶지난달 말 북이 통신선을 복구하자 여당은 “가뭄에 소나기” “한반도 청신호”라고 쌍수를 들었다. 그런데 북이 원했던 한미 훈련 중단을 얻지 못하자 바로 끊어버렸다. 어제 북 김영철은 “엄청난 안보 위기를 느끼게 할 것”이라는 협박도 했다. 이러다 필요하면 또 연결할 것이다. 북(北)은 악행을 카드로 써먹고, 남(南)은 그 카드에 매번 결제한다. 한반도에서만 통하는 참으로 희한한 거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