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양귀비의 과일[이준식의 한시 한 수]<122>

bindol 2021. 8. 20. 06:38

過華淸宮  /  杜牧

 

長安回望繡成堆 장안회망수성퇴
山頂千門次第開 산정천문차제개
一騎紅塵妃子笑 일기홍진비자소
無人知是荔枝來 무인지시려지래

 

장안에서 돌아보면 비단을 쌓은 듯 수려한 여산
산꼭대기 화청궁 겹겹이 닫힌 대문들이 차례차례 열린다
흙먼지 일으키는 단기필마 보며 미소 짓는 양귀비
아무도 여지(荔枝)가 막 도착했다는 걸 알지 못하네

―‘화청궁을 지나며(과화청궁·過華淸宮)’제1수·두목(杜牧·803∼852)
```````````````````````````````````````````````````````

비단을 쌓아 놓은 듯 경관이 빼어난 여산(驪山) 꼭대기에 자리한 화청궁. 
매년 겨울에서 봄까지 당 현종은 양비귀(楊貴妃)를 대동하고
장안을 떠나 이 별궁에서 휴양을 즐겼다. 
쓰촨(四川) 출신 귀비를 위해 황실은 수천 리 먼 곳에서 여지를 실어 날랐다. 

신선도를 유지하려고 황급히 달려온 말이 들이치자 겹겹의 궁문이 차례로 열리고, 
고향의 과일이 도착한 걸 감지한 귀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촌각을 다투는 중대사를 전하는 파발마가 아니라 
귀비의 환심을 사려는 여지가 막 당도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으리라.

근 100년이 흐른 후 시인은 폐허가 된 화청궁을 상상 속에서 되살린다. 
현종의 무절제한 일탈이 안사의 난을 초래했고 왕조 쇠망의 단초가 된 회한의 역사다. 
3수로 된 연작시 가운데 제1수는 그나마 차분하고 완곡한 분위기다. 
하지만 ‘음악이 여산 봉우리마다 울려 퍼지고 양귀비 춤사위에 중원 땅이 무너진다

 

(제2수)거나 ‘화청궁 박수 속에 안록산이 춤추고 
봉우리 너머 웃음소리 바람 타고 넘나든다
(제3수)는 등 시인의 목소리는 점차 거칠어진다. 
익는 시기로 보아 여지를 화청궁으로 날랐다는 데 반론이 있지만, 
역사적 진실과 무관하게 문학은 귀비의 사치와 향락에 주목했기에 
‘양귀비의 과일’은 늘 비판의 표적이 됐다. 

소동파도 ‘궁중 미녀야 여지 먹으며 활짝 웃었을 테지만, 
날리는 흙먼지와 뿌려진 선혈은 두고두고 남아 있네’란 시구를 남겼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