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憎은 心과 曾으로 구성되었다. 曾은 금문에서 음식을 찌는 시루와 그 위로 피어오르는 蒸氣(증기)를 그렸다는 것이 정설이다. 시루는 용기의 아래에 물을 붓고 중간에 가름대를 놓고 그 위로 찔 음식을 놓아 요리하는 기구이다. 금문의 아랫부분은 용기를, 중간부분은 가름대의 평면도를, 윗부분은 피어오르는 증기를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曾은 ‘시루’가 원래 뜻이다. 하지만 이후 ‘일찍이’라는 부사어로 가차되면서 원래 뜻은 瓦(기와 와)를 더한 甑(시루 증)으로 표기하였는데, 瓦를 더한 것은 질그릇으로 된 시루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시루는 지금의 모습에서도 상상되듯, 다른 솥과는 달리 여러 층으로 구성된 특징을 갖는다. 그래서 曾은 ‘층층이 겹을 이룬’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예컨대 層(층 층)은 여러 층을 이룬(曾) 집(尸·시)을, 增은 층층이(曾) 다져 쌓은 흙 담(土)으로부터 ‘더하다’는 뜻을, 贈은 재물(貝·패)을 더하여(曾) ‘贈與(증여)하다’는 뜻을, 繒(비단 증)은 가는 비단실((멱,사))을 겹겹이(曾) 정교하게 짠 비단을 말한다.
憎 역시 상대방에 대한 겹겹이 쌓인(曾) 마음(心)을 말한다. 지독한 미움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아래서부터 층층이 쌓여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曾은 의미부도 겸하고 있다.
惡는 의미부인 心과 소리부인 亞로 구성된, 독음을 여럿 가지는 글자이다. 亞는 갑골문에서부터 지금의 모습과 유사한데, 무덤의 墓室(묘실)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무덤의 玄室(현실·관을 놓는 곳)의 평면도를 그린 것이 亞이다. 亞에서 사방으로 뻗은 길은 동서남북의 방위를 뜻하며, 이는 당시 사람들이 네모졌다고 생각했던 땅의 모습의 상징이다.
갑골문에 의하면, 왕의 시신을 안치하는 일 등을 담당하는 관리를 亞士(아사)라 했는데, 이후의 관직으로 말하자면 上卿(상경) 다음가는 중요한 관직이었다. 이 때문에 제례에서도 처음 잔을 드리는 初獻官(초헌관) 다음의 亞獻官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래서 亞에 亞聖(아성)처럼 ‘버금’이라는 의미가 생겼다.
이처럼 亞는 시신의 안치와 관련이 있으며, 이후 시신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리낌 등으로부터 ‘흉측하다’나 ‘싫어하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亞에 心이 더해진 惡는 싫어하는(亞) 마음(心), 여기서 다시 ‘나쁘다’는 뜻이 생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세상을 보는 맑은 창이 되겠습니다."
'漢字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자 뿌리읽기]<82>윤리(倫理) (0) | 2021.09.15 |
---|---|
[한자 뿌리읽기]<81>화합(和合)과 상생(相生) (0) | 2021.09.14 |
[한자 뿌리읽기]<79> 저주(咀呪) (0) | 2021.09.14 |
[한자 뿌리읽기]<78>제헌(制憲) (0) | 2021.09.14 |
[한자 뿌리읽기]<77>인(燐)과 인(隣) (0) | 2021.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