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라틴어 ‘파르마콘(pharmakon)’은 藥과 毒이라는 어원을 함께 가진다. 즉 약을 제대로 쓰면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됨을 말한다. 플라톤은 이 개념으로 문자의 보급이 가져오는 문명의 전파라는 긍정적 의미와 동시에 기억력의 감퇴와 잘못 전달될 가능성의 병폐 모두를 진단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한자의 어원은 다소 다르다. 藥은 艸와 樂으로 구성되었는데, 樂은 소리부도 겸한다. 樂은 갑골문(왼쪽 그림)에서 두 개의 요(요·실타래)와 木(목·나무)이 합쳐진 모습인데, 요는 현악기를, 木은 나무로 만든 악기를 뜻한다. 금문에 들어 白이 더해졌는데, 白은 소리부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그래서 樂의 원래 뜻은 악기이며, 이로부터 ‘음악’이라는 뜻이 생겼다.
음악(樂)은 고대 중국에서 禮(예)와 함께 개인의 심성을 닦고 나라를 다스리는 가장 중요한 개념의 하나였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 음악으로 안정되고 즐거워지는 특성을 활용한 것이다. 이로부터 樂에는 즐겁다는 뜻이, 다시 좋아하다는 뜻이 생겼다. 물론 전자는 ‘락’으로, 후자는 ‘요’로 읽힘에 유의해야 한다.
이렇듯 藥은 즐거움(樂)을 주는 풀(艸)을 말한다.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藥, 그 약은 지금처럼 화학물질이나 가공된 약이 아니라 생활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풀이 가장 대표적이었을 것이다.
毒은 ‘설문해자’에서는 의미부인 철(싹 날 철)과 나머지가 소리부로 구성된 형성구조이며, 이의 이체자로 복(메꽃 복)과 刀(칼 도)가 합쳐진 글자를 제시하여, 식물의 일종으로 풀이했다.
하지만 소전체(오른쪽 그림)를 자세히 살피면 毒은 비녀를 꽂은 여인(每)에 가로획이 둘 더해진 모습으로, 머리에 비녀 외에 다른 장식물을 여럿 꽂아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毒은 평범하고 정숙한 부인과는 달리, 비녀 이외에 많은 장식물을 주렁주렁 달고 짙은 화장을 한, 아름다우나 남자를 파멸로 몰아갈 수 있는 여성의 모습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毒은 소위 ‘팜 파탈(femme fatale)’의 이미지, 즉 그 화려함과 아름다움이 어머니(每)에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지만 그 유혹이 너무나 강하여 사람을 파멸로 몰고 가는 여성을 말한다.
여성은 창녀와 어머니 두 종류밖에 없다고 했던가. 毒이 약용으로 쓰인 ‘메꽃’을 뜻하다가 ‘독’으로 쓰인 것은 분명 남성중심사상이 확립된 이후의 일일 것이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세상을 보는 맑은 창이 되겠습니다."
'漢字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자 뿌리읽기]<134>한류(韓流) (0) | 2021.09.16 |
---|---|
[한자 뿌리읽기]<133>수능(修能) (0) | 2021.09.16 |
[한자 뿌리읽기]<131>곶(串)과 만(灣) (0) | 2021.09.16 |
[한자 뿌리읽기]<130>환율(換率) (0) | 2021.09.16 |
[한자 뿌리읽기]<129>선물(膳物)과 뇌물(賂物) (0) | 2021.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