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9·끝] 소나무 연리목에 담은 차별없는 세상의 꿈

bindol 2021. 10. 8. 07:34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9·끝] 소나무 연리목에 담은 차별없는 세상의 꿈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10.08 03:00

 

 

 

 

 

이인상, ‘검선도(劒僊圖·18세기 중반)’, 종이에 담채. 96.7×61.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힘차게 뻗은 소나무와 줄기를 타고 올라간 덩굴나무가 우선 눈에 들어온다. 정면을 응시하고 앉아있는 선비의 뒤로 비스듬히 누운 또 한 그루의 소나무가 함께 화면을 구성한다. 서얼(庶孼) 출신 문인화가 이인상(1710~1760)의 검선도(劒僊圖)다. 검선은 검술에 능한 선인(仙人), 혹은 당나라의 신선을 뜻하기도 한다.

 

상반신을 그린 선비의 모습은 무인풍이다. 찢어진 눈매가 날카롭고 바람에 날리는 수염과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옆에는 칼 한 자루까지 세워 두었다. 오른쪽 팔소매 옆으로 몇 가닥의 덩굴나무가 나와 소나무 줄기를 감싸면서 위로 자라고 있다. 붉게 물든 가을날의 담쟁이덩굴이다. 햇빛을 좋아하여 깊은 숲속보다 야산의 소나무와 함께하기를 더 즐긴다. 빨판으로 껍질에 붙으면서 올라가다가 잔가지에 이르면 몸체를 길게 늘어트린다. 자람 길을 빌려준 어미 소나무의 솔잎을 덮어 햇빛을 막아버리는 배은망덕한 일은 하지 않겠다는 배려다. 담쟁이덩굴과 소나무는 서로의 삶에 이익을 주고받는 공생관계는 아니지만 서로 손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남부 지방에 자라며 담쟁이덩굴과 같은 기능을 하는 늘 푸른 잎을 가진 송악도 있다. 둘 다 우리의 옛 그림에서 흔히 만나는 덩굴나무다.

 

화가는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소나무를 즐겨 그렸다. 검선도와 설송도 등 그의 대표적 그림에는 꼿꼿한 소나무와 휘어진 소나무가 서로 교차하는 X자 구도가 흔하다. 곧고 쭉 뻗은 소나무는 벼슬길에 아무런 장애가 없는 적자(嫡子) 선비로 비유하고, 자기 같은 서얼 출신은 휘어져 자라는 소나무처럼 능력이 있어도 제대로 뻗어나갈 수 없음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화가가 서얼이라는 점에 비추어 자화상적인 그림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식물학적으로 두 소나무가 맞닿은 상태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세포가 합쳐져 연리목(連理木)이 된다. 서로 양분을 교환하면서 한 나무가 되는 현상이다. 연리에 관한 기록은 멀리 삼국시대부터 나온다. 곧은 소나무와 굽은 소나무가 붙어서 연리가 된다면, 적서의 차별 없이 함께 능력을 발휘하는 태평성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화가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혹시 바람에 흔들려 연리가 방해받을까봐 담쟁이덩굴을 그려 넣어 둘을 단단히 묶어 주는 상징성까지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