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41] 10원 한 장
입력 2021.10.14 00:00
1950년대 발행된 10원권 지폐들. /한국은행 홈페이지
얼마 전 대선 주자 한 분이 “10원 한 장 피해준 적 없다”는 말을 하자 젊은 사람들이 “10원 한 장이라니?”라고 의아해 했다. ‘10원 한 장’은 동전이 없었을 때 나온 관용구다. 1959년 이전 우리나라에는 동전이 없었다. 일제강점기의 유산이었다.
오늘날에는 화폐를 지폐와 동전으로 나누지만, 금속 화폐 시대의 서양에서는 공식 화폐와 비공식 화폐로 나눴다. 부동산 거래나 국제무역처럼 거래 금액이 크면 금이나 은으로 만든 공식 화폐(주화)를 쓰고, 거래 금액이 작은 생필품 거래에서는 비공식 화폐를 썼다. 평민들은 죽을 때까지 공식 화폐 즉, 고액의 주화를 구경하기 힘들었다.
물론 공식적으로 만든 소액 주화도 있었다. 그러나 액면가치에 비해 제조 비용이 커서 각국의 왕들은 만들기를 싫어했다. 그래서 언제나 턱없이 부족했다. 생필품을 사고팔아야 하는 평민들은 하는 수 없이 소액 주화에 프리미엄을 지급했다. 귀족들이 일부러 쪼개놓은 부스러기 금화나 은화를 실제 무게보다 비싸게 받아들였다. 그러니 소액 주화를 웬만큼 모아서는 공식 화폐와 바꾸지 못했다.
소액 주화에 붙는 프리미엄에는 시장원리가 작용했다. 수급에 따라 그 수준이 출렁였고, 그때마다 민생에 주름이 졌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온전한 금화보다 잘게 쪼개진 채 유통되는, 정체불명의 금화가 많아져서 드디어 파운드화 전체의 신뢰가 흔들렸다.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재상 그레셤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아버지 헨리 8세가 민생을 가볍게 본 데 대한 부작용이라는 의미였다. 그 보고를 받은 여왕은 1560년 대대적인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소액 주화는 제조 비용이 많이 든다. 일제강점기에 동전이 없었던 이유다. 한국은행은 고민하다가 10원짜리 동전의 크기를 줄였다. 그것이 요즘에는 천덕꾸러기다. 그렇다면 없애는 것이 정답이다. 소액 주화가 곧 민생이라는 것이 그레셤의 교훈이지만, 1원과 5원짜리 동전은 이미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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