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봉의 漢詩 이야기

산속에서(山中) / 王勃

bindol 2021. 10. 23. 10:14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산은 모든 계절이 지나가는 정거장이다.

사계절 중에서 정거장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남기는 계절을 꼽으라면 단연 가을일 것이다.

단풍의 고운 빛과 낙엽의 처연함은 정거장을 장식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들이다.

여기에 가을 산을 찾은 사람들의 처경이 혼합되어 각양의 가을 그림이 그려지곤 한다.

당(唐)의 시인 왕발(王勃)은 가을 산이라는 정거장에 어떤 그림을 남겨 놓았을까?


山中  /  王勃


長江悲已滯 장강비이체
萬里念將歸 만리념장귀
況屬高風晩 황속고풍만
山山黃葉飛 산산황엽비

긴 강은 슬픔에 젖어 이미 멈칫거리고

만 리 먼 곳에서 장차 돌아갈 것을 염원하네

하물며 가을 바람 불어 하루해가 저물고
산마다 노란 낙엽이 날리는 때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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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타향에서 가을을 맞이하는 것은 참으로 쓸쓸한 일이다.

시인도 예외가 아니다. 더구나 시인은 긴 강이 내려다보이는 산속에서 늦가을을 맞고 있었으니,

그 쓸쓸함은 배가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인의 쓸쓸하고 슬픈 상황은 그대로 사물에 투영된다.

그래서 멀쩡하게 흐르는 강물도 뭔가 슬픈 사연이 있어서 멈칫거리는 것처럼 시인의 눈에 비치는 것이다.

시인의 쓸쓸함을 타개하는 유일한 방법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눈 아래 흐르는 강물을 보니 그 생각이 더 절실해졌으리라.

여기에 늦가을 산속이라는 특수성이 시인을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늦가을의 찬 바람이 불고, 해는 저물고 노랗게 물들어 떨어진 낙엽들이

이리저리 바람에 날리는 산속의 모든 상황들이 시인으로 하여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염원을 더욱 강렬하게 갖도록 만들고 있다.

늦가을 산속은 두 가지 극적인 것들이 혼재되어 있다.

하나는 눈부시게 고운 단풍 빛이고, 또 하나는 그 눈부심이 돌변해서 빚어낸 낙엽의 처연함이다.

이러한 가을 산속에 사람이 있을 때, 가장 느끼기 쉬운 것이 쓸쓸함이고,

이 쓸쓸한 느낌은 강렬한 귀향 의지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늦가을 산속은 잊고 살던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각성제라고 보아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서원대 중국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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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中  /  王勃

 

長江悲已滯 장강비이체
萬里念將歸 만리념장귀
況屬高風晩 황속고풍만
山山黃葉飛 산산황엽비

 

장강은 슬프게도 이미 막히고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
더구나 저녁바람 세차게 일어
산산마다 날리는 노란 잎새들

왕발(王勃 : 650-676)은 子가 子安이며, 
강주(絳州) 용문(龍門 = 현 산서(山西) 직산(稷山)) 사람이다.
6세 때부터 문장을 쓸 만큼 뛰어난 재주가 있었으나, 
교지령(交趾令)으로 좌천해 간 아버지를 찾아 배를 타고 가다가 
27세 때에 강물에 빠져 요절하였다.

왕발은 수의 유명한 학자 王通의 손자이며, 
시인 王績의 조카로 시문에 뛰어났다.
왕발은 찬란한 唐詩의 선구자의 한 사람이었다.
六朝의 탐미적인 유풍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그의 악부체(樂府體)의 짧은 시는 소박한 가운데 
시인의 진실한 감정을 잘 나타낸 걸작들이다.

특히 그의 「등왕각서(呻王閣序)」는 변체(騈體) 산문으로, 
당대 변문의 대표일 뿐만 아니라 백세에 전해질 불후의 가작이다.
전해 오는 그의 시가 많지 않으나, 5언시 30여 수는 나름대로의 
시의 높은 경지를 개척하고 있다.

다음 「山中」은 고종인 李治의 아들이 鬪鷄를 좋아하자, 
이를 풍자하여 「격영왕계문(檄英王鷄文)」이란 글을 지었는데, 
고종의 미움을 사 관직을 박탈당한 뒤 강가에 노닐 때에 여수를 읊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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