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

[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109>어이설패(語以泄敗)

bindol 2021. 10. 29. 05:20

語: 말씀 어 以: 써 이 泄: 샐 설 敗: 패할 패

 

모든 것을 쥐도 새도 모르게 은밀하게 진행해야 결과가 보장된다는 한비의 말로 ‘사이밀성(事以密成)’, 즉 일이란 은밀해야 성공한다는 말과 함께 쓰인다. 한비자 ‘세난(說難)’ 편에 나온다. 한비는 말을 가려서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처럼 서로 먹고 먹히는 격동의 시대를 이겨내기 위해서 세 치 혀는 목숨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다.

춘추시대 진(秦)나라의 대부 요조(繞朝)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처신과 관련한 이야기가 있다. 진(晉)나라의 대부 사회(士會)가 진(秦)나라로 달아났는데, 진(晉)나라에서는 진(秦)나라가 그를 벼슬아치로 등용할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위수여(魏壽餘)를 파견해 계략을 써서 사회를 데려오려고 했다. 그런데 요조가 먼저 이런 진(晉)나라의 계획을 알고 진(秦)나라 강공(康公)에게 권유했다. “위수여가 이번에 오는 것은 사실은 사회를 속이기 위해서입니다. 당신께서 따로 그를 만나십시오.”

그러나 강공은 듣지 않았다. 위수여가 진(秦)나라에 도착한 뒤, 강공에게 사회와 함께 진(晉) 나라로 가서 위(魏) 땅의 일을 결정짓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강공은 이를 허락하고 말았다. 사회가 출발하기 전에 요조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우리 진(秦)나라에 진(晉)나라의 의도를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단지 나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이오.”

 

그러자 위기의식을 느낀 사회는 자기 나라로 돌아온 뒤, 요조의 재능과 지혜가 자신을 크게 위협한다고 느껴 첩자를 보내 요조를 모함했고, 강공은 그 모함이 사실인 줄 알고 요조를 죽이고 말았다.

만일 요조가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은밀히 행동했다면 이토록 허망하게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화를 면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한비가 제시하는 해법은 “오랜 시일이 지나 군주의 총애가 깊어져야만 심오한 계책을 올려도 의심받지 않고 군주와 서로 다투며 말하여도 벌을 받지 않을 것(得曠日彌久, 而周澤旣渥, 深計而不疑, 交爭而不罪·사기 ‘노자한비열전’)이라는 것이다. 군주의 절대적 신임 이전에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제거된 자들은 늘 있었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