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후 만주로 떠난 청년들, 광복 뜻 품고 비밀 무장단체 결성
의열단·한인애국단이 대표적…
항일 위해 사격, 폭탄 제조 등 배워 일본군·친일파에 맞서 싸웠어요
최근 개봉한 '암살'이라는 영화의 인기가 대단해요. 영화를 본 관객들은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그 의미와 감동을 더욱 크게 느꼈다고도 하고요.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 때 항일운동에 앞장선 인물들이 친일파 암살 작전을 둘러싸고 펼쳐내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단순히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었어요. 일제강점기 때 이를 진짜 실행한 인물들이 있었지요. 대표적인 인물이 의열단과 한인애국단이라는 단체에 소속된 한국의 젊은이들이에요. 과연 두 단체는 어떻게 조직되었고 어떻게 항일운동을 펼쳤을까요?
◇만주에 13명의 한국 청년이 모여
1919년 일제의 지배에 맞서 독립을 외친 3·1운동이 일어나고 나서 러시아 연해주, 중국 상하이, 국내의 한성 등 여러 곳에 임시정부가 세워졌어요. 그러다가 중국 상하이에 있던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여러 곳에 다른 이름으로 있었던 임시정부가 합쳐져 하나의 임시정부를 세우게 되었고요.
▲ 그림=이창우
또한 3·1운동이 일어나고 나서 수많은 애국지사가 독립 투쟁을 벌이기 위해 만주 지역으로 건너가 무장단체를 조직하고 일본군과 맞서 싸우기도 했는데 그중에는 의열단이라는 특별한 항일운동 단체도 있었어요.
의열단은 1919년 11월에 만주의 지린성에 13명의 청년이 모여 비밀리에 조직한 단체였어요. 의열단이라는 이름은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한다'는 뜻인데 그들이 벌인 정의로운 일은 바로 조국의 독립에 방해되는 인물을 제거하거나 일제의 주요 기관에 피해를 주는 것이었지요. 나중에는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애쓴 김구·김규식·김창숙·신채호 등이 고문 역할을 했다고 해요.
◇조국 광복을 위해 나선 멋진 신사들
"우리의 목표는 총독과 고관 등 일제의 높은 관리, 군부의 중요한 인물, 매국노와 친일파의 우두머리, 독립투사의 계획이나 형편을 일본 경찰에게 몰래 보고하는 밀정과 반민족적 행위를 일삼는 부자들을 비밀리에 살해하는 것입니다."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찰서와 주요 기관을 파괴하여 일제에 피해를 주는 것 또한 우리 의열단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의열단 단장과 단원이 밝힌 의열단의 목표예요. 의열단의 단원들은 주로 초기에는 만주 지방에 세워진 독립군 양성 기관인 신흥무관학교 출신이었어요. 단장은 22세의 청년 김원봉이란 인물이었고요. 이들은 품위와 절도 있는 행동에, 사격술과 무술에 뛰어났고 폭탄 제조법을 배우기도 했어요. 단체를 조직하고 얼마 뒤 근거지를 베이징으로 옮겼으며, 상하이까지 진출하며 단원을 늘려서 1920년대 중반에는 약 70여명에 이를 정도였지요.
◇일제의 주요 인물들을 암살하라
의열단의 의거 활동으로는 1920년 9월 박재혁의 '부산 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 1920년 12월 최수봉의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 1922년 3월 오성륜·김익상 등의 '일본 육군 대장 저격 사건', 1923년 1월 김상옥의 '종로 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 1924년 1월 김지섭의 '도쿄 일본 궁성 입구의 니주바시(이중교) 폭탄 투척 의거', 1926년 12월 나석주의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식산은행 폭탄 투척 의거' 등을 꼽을 수 있어요.
한편 1931년에는 한인애국단이라는 항일운동 단체가 상하이에서 비밀리에 조직되기도 했어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령이었던 김구는 독립 의지가 투철한 한국 청년들을 한인애국단의 단원으로 모집했어요. 이봉창, 윤봉길, 유상근, 최흥식, 유진만, 이덕주 등 여러 인물이 단원으로 참여했고요. 한인애국단의 주요 목표는 나라의 독립에 방해되는 일본의 주요 인물들을 암살하는 것이었어요. 그로써 일제의 국가 운영에 혼란을 주고 일제의 대외 침략 의지를 좌절시키려 했지요.
◇의열 투쟁에 목숨을 바친 한국인들
1932년 1월에 이봉창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국왕을 향해 폭탄을 던졌어요. 일본 국왕 행렬이 도쿄 교외에서 군대의 관병식 참관을 마치고 궁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쿠라다몬 앞에 이르자 일본 국왕이 탄 마차를 향해 폭탄을 던진 것이에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본 국왕을 암살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지요.
1932년 4월에는 윤봉길이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폭탄을 던졌어요.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일제는 전승 기념 및 일본 국왕 생일인 천장절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렀는데 이때 윤봉길이 기념식 단상을 향해 폭탄을 던진 것이에요. 단상에 있던 상하이 파견군 대장과 상하이 일본 거류민 단장 등 2명이 그 자리에서 죽고, 일본군 지휘부 10여명이 크게 다쳤지요.
이처럼 국내외에서 비밀 조직을 결성하여 일제의 식민 통치 기관을 폭파하거나 침략 행위에 앞장선 일본인과 친일파들을 사살하는 활동을 의열 투쟁이라고 해요. 적은 경비와 인원으로 일제와 친일파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성과를 올릴 수 있었어요. 물론 그 바탕에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젊음과 목숨을 바친 인물들의 숭고한 희생이 따랐지요.
[함께 생각해봐요]
의열단이 국내외에서 의거를 행하고, 독립군이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일본군과 맞서며 무장투쟁, 즉 무기를 갖추고 독립을 위해 싸울 때 국내에서는 경제적인 자립을 통해 독립을 이루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했어요. 물산장려운동이 바로 그것이지요. 물산장려운동은 어떤 운동이었고,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또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를 알아보아요.
지호진·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뉴스 속의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스 속의 한국사] "대한 여성들이여, 독립운동에 동참합시다" (0) | 2021.11.05 |
---|---|
[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 흔들던 왕자의 난, 최후 승자는 누구? (0) | 2021.11.05 |
[뉴스 속의 한국사] 백제 무왕, 익산에 미륵사 지은 이유는? (0) | 2021.11.05 |
[뉴스 속의 한국사] 백제 마지막 수도, 사비서 부흥 꿈꾸다 (0) | 2021.11.05 |
[뉴스 속의 한국사] '공산성' 지은 백제… 제2의 도약 꿈꾸다 (0) | 2021.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