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마음읽기] 꿈이라는 친구

bindol 2018. 9. 5. 06:33

고독과 상심 더 잘 버티게 해주는 벗
주종관계 아닌 친구 사이로 대화하길

장강명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


원치는 않지만 가끔 젊은이들을 만나 진로상담 비슷한 대화를 하게 된다. 대학생 기자도 있고 작가 지망생도 있고 언론계 후배도 있다. 내게 뾰족한 해결책이 있을 턱이 없다. 정답은 누구도 모르며, 삶이라는 시험장에서는 각자 자신의 답안을 서술형으로 성실히 써내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으리라.
 
다만 어떤 시대를 인생의 특정 시기에 통과하는 이들에게는 문제들이 엇비슷한 유형으로 출제되는 것 같다. 그중 하나에 대해 써본다. ‘꿈’ 얘기다.
 
꿈 때문에 고민이라는 청년들은 내가 보기에 크게 세 부류다. 첫째, 꿈이 없어서 고민이라는 경우다. 이들은 ‘꿈이 꼭 있어야 하나요’라든가, ‘꿈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꿈을 찾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하고 묻는다.
 
둘째는 꿈의 방향을 걱정하는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고 싶은 일을 부모가 반대한다, 꿈이 너무 여러 개라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랫동안 준비한 길인데 막상 걸어보니 나와 안 맞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꿈과 현실이 충돌해 그사이에 낀 젊음들이 고통을 호소한다. 꿈을 좇는 길이 너무 열악해 몸과 마음을 다친 경우도 있고, 생활에 치여 점점 꿈이 흐려진다며 하소연하는 이도 있다.
 
얼마 전 어느 뉴미디어 기업의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이 모든 질문들에 꽤 그럴싸하게 답안을 제출할 수 있는 공통 요령을 하나 발견했다. ‘꿈’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친구’라는 단어를 대신 집어넣으면 된다는 것이다.
 
‘꿈이 꼭 있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친구가 꼭 있어야 하느냐’로 바꿔서 생각해보자. 친구가 의식주만큼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다. 그러나 친구 없는 삶은 황폐하다. 친구가 있으면 덜 외롭고, 힘들 때 위로를 얻는다. 혼자라면 시도하지 않을 일을 친구가 있으면 같이 하게 된다. 그러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인간적으로 성숙해진다.
 
꿈도 그러하다. 꿈이 있는 사람은 고독과 상심을 더 잘 버틴다. 이루고픈 목표가 없으면 내일도 오늘 같길 바라며 작은 세상을 수동적으로 살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꿈이 있으면 그 반대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학기 초에 매력적인 동급생에게 초조한 얼굴로 다가가 “우리 사귀자”고 말을 붙인들 갑자기 친구가 되지는 않는다. 이 녀석 저 녀석 어울리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중에 단짝이 생긴다. 꿈도 마찬가지다. 느긋한 마음으로 여러 분야를 살펴봐야 한다. 다만 나이가 들면 친구를 새로 사귀기 어렵듯, 꿈도 탐색하기 적당한 시기가 있는 것 같다.
 
부모들은 자녀가 공부 잘하는 아이, 좋은 집안 아이와 친구가 되길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가 원하는 대로 친구를 사귀지는 않았다. 같이 있으면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아이와 친구가 됐다. 꿈도 그렇지 않을까. 수입과 사회적 지위도 따져볼 요소이지만, 내가 좋아하느냐, 나와 맞느냐가 중요하다.
 
더 친하고 덜 친한 친구를 동시에 여럿 사귈 수 있는 것처럼, 크고 작은 여러 가지 꿈을 함께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 터놓는 절친한 벗이 스무 명이 넘는다면 좀 이상하다. 꿈도 그렇다. 살다 보면 여러 친구 중 ‘베스트 프렌드’가 바뀔 수 있듯이 인생의 목표도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베프도, 인생 목표도 매년 바뀐다면 뭔가 잘못됐다.
 
첫인상이 좋아 어떤 동기와 한동안 어울렸는데 알고 보니 나와 말이 안 통할 수도 있다. 그런 때 첫인상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억지로 계속 만난다면 어리석은 일 아닌가. 마찬가지로 어릴 때 꿈이었다는 이유로 맞지 않는 길을 끝까지 걸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친구는 상사가 아니다. “너 그거밖에 못 해? 지금 시간이 모자라는데 꼭 잠을 자야 해?”라고 다그치는 사람이 내 친구일 수 없다. 그런 친구가 있다면 단호하게 “나는 네 부하가 아니다”라고 대꾸해줘야 한다. 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꿈이 ‘지금 임금이 밀리고 추행을 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나를 위해 참으라’고 속삭인다면 결연하게 거절하라. 꿈은 동반자이지, 삶의 주인이 아니다.
 
아무리 속으로 친구라고 믿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오랫동안 만나지 않으면 결국 멀어진다. 두어 달에 한 번씩이라도 짬을 내 안부를 물어야 한다. 서로 어떤 처지인지 살피고 상대에게 관심이 있음을 확인해야 우정이 유지된다. 꿈과의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내게도 꿈이 여럿 있다. 그중 하나는 걸작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바로 그 꿈 덕분에 내가 바라봐야 할 곳을 정확히 알게 되고, 남을 시기하지 않게 된다. 이 친구와 오래도록 깊고 다정한 대화를 나누며, 단단하고 풍성하게 살고 싶다.
 
장강명 소설가


[출처: 중앙일보] [마음읽기] 꿈이라는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