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암행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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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는 춘향전이나 어사 박문수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암행어사 출두야~'를 외치며 탐관오리를 벌주는 암행어사는 멋져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당시 '고난도 3D' 업종이었다고 해요. 여기서 '3D'란 더럽고(dirty), 힘들고(difficult), 위험하다(dangerous)는 뜻입니다.
망가진 갓, 해진 도포… 거지 행색으로 다녀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몇 날 며칠을 걸어온 암행어사가 간신히 한 숙소에 들어갔어요. 마루는 부서졌고 들보는 허물어진 위험한 건물이었죠. 잠시 고민하던 어사는 달리 갈 곳이 없다는 걸 깨닫고 "무너진 건물에 깔려 죽는 것도 운명이겠구나!" 탄식한 뒤 들어갔어요. 자리에 눕자 쥐가 이불 속으로 달려 들어와 온몸을 깨물었고 빈대 수십 마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대요. 어사는 "내가 태어난 이래로 고생이 이날 밤 같은 때가 없었다"고 하소연합니다. 1812년(순조 12년) 함경도 암행어사로 파견됐던 구강(1757~1832)이 쓴 일기의 한 대목이에요.
신분을 속여야 했기 때문에 편안한 여행을 하지 못했던 암행어사의 이야기는 눈물겹기까지 합니다. 1822년 평안도 암행어사였던 박내겸(1780~1842)은 어사 활동 일지인 '서수일기'에서 이런 회고를 합니다. 망가진 갓을 쓰고 해진 도포를 입은 뒤 붓 수십 자루를 보자기에 싸서 다녔대요. 마을에서 누구냐고 물어보자 "귀양 갔다 돌아가는 길인데 붓을 팔아 여행 밑천으로 삼고 친지에게 구걸하고 다닐 작정"이라고 했답니다.
한 번 파견에 서울~부산 5배 거리 강행군
암행어사의 암행(暗行)은 '비밀리에 다닌다'는 뜻이고, 어사(御史)는 '임금의 명을 받아 지방에서 관리의 잘못과 백성의 사정을 조사하는 임시 벼슬'이란 뜻이에요. 1509년(중종 4년)에 이 말이 실록에 처음 등장하는데, 1735년(영조 11년)부터 어사를 추천하는 것이 제도화됩니다. 어사 임명 명령을 받으면 집에도 알리지 말고 즉시 떠나 한양 도성 밖에서 임금의 임명장을 뜯어 봐야 했습니다. 어사는 부정행위가 명백한 지방관을 가두고 신문할 권한이 있었고, '유척'과 함께 교통 기관인 역(驛)에서 말을 빌려 탈 수 있는 '마패'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마패에 조각된 말의 마릿수만큼 말을 빌릴 수 있었다고 해요.
이들은 여러 고을을 두루 다녀야 했기 때문에 대단히 긴 거리를 이동해야 했습니다. 암행어사 구강은 174일 동안 5595리, 박내겸은 126일 동안 4915리를 이동했는데, 1리를 400m로 계산하면 각각 2238㎞, 1966㎞를 다닌 셈이에요. 서울~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416㎞)의 5배에 이르는 거리입니다.
신분 노출을 피하면서 숙식을 해결하다 보니 곳곳에서 문전 박대를 당하기 일쑤였어요. 게다가 추위와 산짐승의 위험에도 맞서야 했죠. 구강은 "얼굴이 검푸른 빛이 되고 머리털엔 싸라기눈이 맺혔으며 수염엔 얼음이 매달렸다"고 회고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신분을 밝혀야 할 때도 있었는데, 박내겸은 가짜 어사로 의심받아 마을 군관들에게 체포될 위기에 놓이자 품에서 마패를 꺼내 "너희들 혹시 이런 것 본 적 있느냐"며 외쳤고, 그러자 군관들은 혼비백산해 달아났다고 합니다.
어사도 감동했던 '암행어사 출두야'
암행어사의 순기능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박내겸은 이런 일화를 소개했어요. 민가를 지나던 중 한 할머니가 우는 아이를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암행어사 온다, 뚝!" 이유를 물어보자 "어사 소문을 듣고 관리들이 모두 덜덜 떨기 때문인데, 덕분에 살기 편해졌으니 자주 다녔으면 좋겠다"고 했대요. 암행어사가 다닌다는 말만 듣고도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았으니 범죄 예방 효과가 있었던 셈이죠. 암행어사 일정의 하이라이트인'어사 출두'의 순간에는 암행어사 본인도 가슴이 벅차올랐던 모양입니다. 역졸들이 우르르 관아로 몰려가 "암행어사 출두야!"를 외치는 상황에 대해 박내겸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놀라 피하는 것이 마치 바람이 날고 우박이 흩어지는 듯했다"(서수일기 5월 13일) 고 기록했어요.
[암행어사 '박문수']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등 암행어사를 한 인물들은 많아요. 하지만 암행어사로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영조 때 문신 박문수(1691~1756)였어요. 그는 병조판서와 호조판서, 우참찬 등의 벼슬을 지냈어요. 1741년 함경도에서 굶주리는 백성이 많이 생겼을 때 경상도 곡식 1만 섬을 실어다가 구제해 송덕비가 세워지기도 했죠. 그가 암행어사로 활동한 것은 1727~1728년까지 1년 남짓 짧은 기간이었어요. 그런데 그 무렵 활동으로 명성이 자자해 수많은 설화가 생겨났습니다. 예를 들어, 한 백정이 자신의 삼촌 행세를 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그가 "천한 신분으로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해서 그랬다"는 사연을 털어놓자 비밀을 지켜주며 실제 삼촌처럼 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이런 설화가 97가지란 집계도 있는데, 다른 암행어사의 이야기도 많이 섞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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