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박보균 칼럼] 한국 보수의 재출발은 용기와 희생

bindol 2018. 9. 6. 05:04


매케인 장례식은 말의 향연
오바마는 리더십의 요건을
세련된 언어로 풀어냈다
“용기는 자기연민에 대한 경멸”
매케인 유산, 보수의 매력이다
한국 보수층에 상상력 제공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존 매케인은 장렬하다. 그의 삶은 비장미(悲壯美)를 드러낸다. 그의 장례식(1일 미국 워싱턴 국립성당)은 그런 언어들로 장식됐다. 추도사는 두 전직 대통령(버락 오바마, 조지 W 부시 )이 우선 맡았다.
 
그 자리는 언어의 향연이었다. 그 속에서 지도력과 말의 관계가 조명됐다. 리더십의 요소는 무엇인가. 지도력은 어떻게 작동하나. 그 궁금증에 추도사는 선명하게 반응했다. 오바마의 매케인 인물평은 명쾌하다. ‘전사(戰士), 정치 지도자, 애국자’다. 매케인은 용기다. 부시의 묘사는 압축적이다. “그의 서사시적 삶은 용기와 품격의 조합이다.” 매케인은 6선 연방 상원의원(공화당, 애리조나주)이었다.
 
매케인(1936년생)의 30대는 전쟁 영웅이다. 그는 베트남전에 나갔다(해군 조종사). 1967년 그의 폭격기는 지대공 미사일에 추락했다. 그는 부상한 채 붙잡혔다. 하노이 감옥에 수감됐다. 그는 해군 제독의 가문 출신이다. 그 무렵 아버지는 태평양 사령관이었다. 공산 베트남(월맹)은 포로 매케인을 협상 카드로 쓰려고 했다. 조기 석방을 그에게 제안했다. 그의 거부는 격렬했다. “(감옥에) 먼저 들어온 사람이 먼저 나간다.” 그는 5년간 갇혔다.
 
용기는 지도력의 으뜸 덕목이다. 용기는 무엇으로 생산되는가. 그것은 “자기 연민(self-pity)에 대한 경멸”(오바마)이다. 용기는 자기희생이다. 매케인의 석방은 1973년 1월 파리 평화협정 덕분이다.  
 
협정 주인공은 헨리 키신저(전 미국 국무장관)다. 키신저(95세)는 추도연단에 섰다. 키신저는 “명예와 고귀함은 매케인의 삶의 방식이었다. 그는 대의명분을 위해 치열하게 싸운 전사였다. 도덕적 의무에 대한 본능적 감각을 가졌다”고 했다. 명예, 품격, 도덕적 의무는 지도력의 요소다. 거기에서 보수의 경쟁력은 자라난다. 매케인은 보수의 아이콘이었다.
 
“명예는 의무가 아니라 무형의 자질(intangible quality)이다. 그것은 자기 이익에서 벗어난 내적 충동을 반영한다.” 키신저의 어휘는 추상(抽象)이다. 하지만 그것은 매케인의 유산과 어울리면서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명예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정치에서 밀려났다. 한국 정치에서는 아득하다. 한국 보수는 용기와 희생, 명예와 품격, 도덕적 의무에서 실패했다. 그것들은 리더십의 작동 장치다. 보수는 그 지점에서 재출발해야 한다.
 
박보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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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케인 장례식은 그 자신의 죽기 전 연출이다. 지난해 그는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그는 전직 대통령들에게 추도사를 부탁했다. 과거 매케인은 두 사람에게 패배했다. 2000년 경선(부시), 2008년 대선 본선(오바마)에서다. 오바마는 그 요청을 공개했다. “조지(부시)와 내가 전국 시청자 앞에서 그에 대해 멋진 말을 하도록 만들었으니 매케인은 최후의 승자(get the last laugh)다.” 마지막에 웃는 자는 경쟁자의 찬사를 듣는 자다. 그 대목은 고급 유머다. 조문객들의 폭소가 터졌다. 부시도 웃었다.
 
그 순간 장례식은 수사학(修辭學)의 제단이 된다. 추도식은 경건했지만 경쾌하게 진행된다. 정치는 말로 세련된다. 정치 불신은 표현력의 빈곤 탓이다. 한국 정치는 언어 연마에 게으르다.  
 
2008년 그의 대선 출마 때다. 나는 그의 유세장을 찾아갔다. 미국 중부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타운 홀 미팅이다. 그는 “포로 시절에 나는 조국과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애국심은 역경 속에서 단련된다.
 
매케인의 별명은 ‘이단아(maverick)’다. 초당적 행적 때문이다. 그는 국익과 가치를 앞세웠다. 당론 이탈은 힘든 선택이다. 오바마의 해설은 언어의 조련사답다. 그는 말의 운용에 숙달됐다. “매케인은 정치적 편의주의나 정당 관행에 맞추려는 진실의 왜곡에 익숙해지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부시는 매케인의 매력을 농축했다. “그는 권력 남용을 혐오했으며 편견이 심한 사람과 으스대는 폭군을 참지 못했다.” 그 자세는 보수정치의 지평을 넓혔다. 매케인의 유산은 한국 보수층에 상상력을 준다. 부시의 말은 트럼프를 겨냥한다.
 
트럼프는 추도식에 초대받지 못했다. 그것은 매케인의 의도였다. 그는 트럼프의 분열정치를 비판했다. 죽어선 워싱턴 주류 인사들의 말에 의존했다. 오바마는 매케인의 기대에 부응했다. “우리는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진정성과 애국심을 의심한 적이 없다. 우리는 같은 팀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 표현으로 통합의 리더십은 대중의 열망으로 각인된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 진영은 험악하게 나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통합을 말한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협치를 거론한다. 하지만 집권세력은 자기만의 길로 질주한다. 변화의 계기가 절실하다.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출처: 중앙일보] [박보균 칼럼] 한국 보수의 재출발은 용기와 희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