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虐殺 학살
“땅을 넓히고 백성을 모여들게 하는 것은 군자가 하고자 하지만(欲) 즐거워하는(樂) 바는 아니고, 천하의 가운데 서서 사해의 백성을 안정시킴은 군자가 즐거워하지만(樂) 천성으로 바라는(性) 바가 아니다(廣土衆民 君子欲之 所樂 不存焉 中天下而立 定四海之民 君子樂之 所性 不存焉).”
군자의 욕망을 『맹자(孟子)』는 이렇듯 욕(欲)·낙(樂)·성(性) 세 단계로 구분했다. 가장 얕은 것이 욕, 그 다음이 낙, 가장 깊이 뼛속까지 깃든 근원적인 욕망이 성이다. 모두 ‘욕망하다’라는 뜻이자 군자가 즐기고 좋아한다는 기호(嗜好)를 말한다.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한 맹자는 선(善)을 욕망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가르쳤다. 다산(茶山) 정약용도 『맹자요의(孟子要義)』를 지어 “사람의 욕망(性)이 반드시 선을 행하기(爲善)를 좋아함은 물의 욕망(水性)이 아래로 내려가기를 좋아하고, 불의 욕망(火性)이 반드시 위로 올라가기를 좋아함과 같다”며 “처음 생명을 부여할 때 하늘이 이런 성(性)을 명령했다. 비록 탐음학살(貪淫虐殺)하여 하지 않는 짓이 없더라도 이 성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고 성선설에 동감을 표시했다.
그런데 성선설에 대한 믿음을 깬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노르웨이에서 광기 어린 청년이 무고한 이들을 살육(殺戮)하는 참극을 벌였다. 죽임을 뜻하는 한자는 적지 않다. 죽일 살(殺)은 나무와 풀을 벤다는 뜻의 살(杀)과 몽둥이, 무기(殳)가 합쳐진 글자다. 육(戮)과 의미가 같다.
산 자를 죽이는 게 살이요, 이미 죽은 시신을 훼손해 많은 이들이 둘러 보게 중인환시(衆人環視)하는 게 육이다. 도륙(屠戮)은 무참하게 마구 죽이는 것이다. “후회는 의심스러운 일을 방치하는 데서 나오고, 재앙은 모조리 죽이는 일을 저지르는 데에서 생긴다(悔在于任疑, 孽在于屠戮).” 중국 고대 병법서 『위료자(尉繚子)』가 도륙을 경계하는 구절이다. 『사기(史記)』 진시황본기의 “간특한 (전국시대) 6국의 군주들은 한없이 탐욕하고 난폭한 마음으로 학살을 그치지 않았다”는 기록과 같이 인류는 무수한 학살(虐殺)의 역사를 갖고 있다. 맹자와 다산이 인간에 대해 품은 믿음은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인간의 본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여름이다.
신경진(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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