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권농가
중앙일보
입력 2021.04.01 00:16
유자효 시인
권농가
남구만(1629∼1711)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 칠 아이는 여태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 청구영언
농지는 농민이 가져야 한다
봄이다. 해가 점차 일찍 뜨고 종달새가 운다. 농사일이 시작되는 계절, 소 여물을 먹여야 할 머슴은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느냐. 고개 너머 긴 이랑 밭을 언제 갈려고 그러느냐.
조선 숙종 때 소론의 영수였던 약천 남구만이 장희빈의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데 반대하다가 강원도 망상으로 유배되었다. 동해시 망상동 신곡 약천 마을에는 ‘재 넘어와 사래 긴 밭’의 지명이 있고 남구만이 이곳에서 이 시조를 지었다는 비석이 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 나라의 기반이었던 조선. 세종은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고 했다. 약천은 유배 중에도 근면 성실의 미덕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시조는 농사는 머슴이 짓는 것으로 돼 있다. 양반인 내가 일찍 일어나 소를 끌고 밭을 가는 게 아니라 아이더러 농사일을 서두르라고 채근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계급이 분명한 조선조 사대부의 인식이었다.
오늘날 농지는 농민이 소유하고 농사를 짓도록 돼 있다. 그런데 소유만 하고 농사는 짓지 않는 사람들, 신도시가 들어선다는 개발 정보를 빼돌려 농지를 사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농민들의 피눈물을 자아낸다.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다.
유자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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