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태산이 높다하되
중앙일보
입력 2021.04.29 00:17
유자효 시인
태산이 높다하되
양사언(1517∼1584)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 병와가곡집
“세상에 ‘펑’하고 일어나는 일은 없다”
한국인의 인생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시조가 이 작품이 아닌가 한다. 그만큼 널리 애송되는 시조다. 에베레스트를 오를 때도 시작은 첫걸음에서 비롯된다. 풍설(風雪)과 산소 희박, 고산증과 눈사태 등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내디딘 걸음걸음이 끝내는 정상으로 인도한다. 그러나 이 평범한 진리를 끝까지 이루어낸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 태산이 아무리 높다 해도 하늘 아래 있는 산이다. 오르고 또 오르면 오를 수 있다. 그런데 올라갈 생각은 하지도 않고 산이 높다고만 한다.
지난 2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씨는 “한순간에 이뤄진 게 아니다. 나는 경력을 쌓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노력했다. 세상에 펑(BANG)하고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윤씨가 증명해 보인 것이 바로 이 시조의 정신이라고 하겠다. 그녀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쌓이고 쌓여 불가능할 듯 보인 한국인의 오스카 연기상 수상을 이뤄낸 것이다.
이 시조를 지은 양사언은 조선 중종과 선조 대의 문신이자 문장가·서예가였다. 호는 봉래(蓬萊). 위로 형 양사준과 아래로 동생 양사기 삼형제가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유자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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