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노트북을 열며] 만든 놈, 어긴 놈, 버티는 놈

bindol 2018. 9. 13. 06:10


이경희 디지털콘텐트랩 차장

이경희 디지털콘텐트랩 차장


부정청탁금지법 시행 만 2년째. 법을 만든 이들은 얼마나 잘 지키고 있을까. 국민권익위원회는 청탁금지법과 공무원 윤리강령을 적용받는 1483개 공공기관 2년치 해외출장 지원 실태를 검토한 결과 국회에선 의원 38명과 보좌진·입법조사관 16명이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난 7월 밝혔다. 권익위는 ‘부당 지원 의심 기관’ 22곳은 공개했으나 수혜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서류상으로만 검토한 것이라 각 기관에서 자체 실사를 해야 한다면서다.
 
지난달 말 하승수 ‘세금도둑 잡아라’ 공동대표가 권익위에 정보공개청구로 받아내 공개한 자료에선 윤곽이 더 드러난다. ‘다른 공공기관 공직자에게 예산으로 지원한 해외출장’ 수혜자 3500여 명 중 국회 소속은 157명.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국회를 제외한 기관이 받은 1인 출장지원금은 평균 294만원인 반면 국회가 받은 돈은 평균 770만원(최고 1600만원)이었다. 피감기관들은 VIP 모시느라 일반적인 출장비의 2.6배를 들인 셈이다.
 
권익위가 지적한 ‘부당 지원 의심 기관’이 보내준 출장으로 좁히면 국회에선 76명이 걸린다. 외교통상위원회 피감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이 3억여원을 들여 39명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약 1억7000만원을 들여 30명을 해외로 보냈다. 기획재정부는 1억원 남짓한 돈으로 8명을 비행기에 태웠다. 재외동포재단·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산림청 등도 한두 명씩 보내줬다.  
     
그중 기재부 등 중앙정부 기관이 지원한 출장이나 공식 행사 참가자는 인터넷 검색으로도 찾을 수 있다.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에 담당 공무원이 쓴 보고서가 등록돼 있거나 행사 기록이 남아 있어서다. 하지만 방문 목적을 단순 ‘현지 시찰’이나 ‘국제 교류’라 적은 ‘묻지마 출장’이 더 많았다.
 
권익위는 문제가 된 기관에 8월 말까지 자체 조사를 하라고 했다. 중앙일보가 이에 맞춰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KOICA 등은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다며 비공개 처리했다. ‘내부 검토 과정에 있는 사항 등으로서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 등이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때 비공개를 허용하는 정보공개법 9조 1항 5호에 기댄 것이다. 그 독소조항을 핑계로 내부 검토를 차일피일 미루다 여론의 관심이 식을 때까지 버티기에 들어가도 막을 방법이 없다.
 
행정안전부는 이런 식으로 정보를 비공개할 경우 진행 과정의 ‘현재 단계’ ‘종료 예정일’을 함께 안내하도록 한 ‘공공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1년 전 입법예고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국회는 스스로 범법자라 선언하는 셈이다.
 
이경희 디지털콘텐트랩 차장 

[출처: 중앙일보] [노트북을 열며] 만든 놈, 어긴 놈, 버티는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