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무의 그림세상

반가사유상을 사유하다

bindol 2022. 2. 24. 04:20

반가사유상을 사유하다

중앙일보

입력 2022.02.24 00:30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고요한 스틸 컷을 기대했는데 움직이는 동영상이었다. 두 국보 반가사유상을 함께 본 인상이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한때 국보 78호, 83호라고 불렸던 금동반가사유상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지정번호를 쓰지 않지만 편의상 옛 번호로 구분하고자 한다.)

움직임은 두 조각상 모두 확고한데 그냥 정지된 사유가 아니라 살아 숨 쉬고 있다고 할 정도다.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두 조각상 모두 전혀 다른 느낌으로 변신한다. 그간 반가사유상의 미소와 그것의 미묘한 변화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려졌으나 막상 두 조각상을 나란히 마주하고 보니 표정뿐만 아니라 손과 발, 신체 전체가 살아있는 듯 생생하다.

나란히 전시된 국보 불상
살아 숨쉬는 듯한 생동감
절대자보다 인간을 닮아
조상이 보여준 ‘생각의 힘’

국립중앙박물관에 나란히 공개된 반가사유상 두 점. 모두 국보다. [중앙포토]

전체적인 움직임은 화려한 보관을 가진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이 약간 더 커 보인다. 고개를 당기면서 살짝 틀어서인지 얼굴부터 중심축의 변화가 크게 다가왔다. 그러나 단순한 보관을 쓴 국보 83호의 경우 반전의 움직임을 담고 있다. 엄격한 중심축과 절제된 장식으로 보다 정적이지만 발의 움직임으로 이런 적막 고요를 깨고 있어 놀라울 따름이다. 특히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보면 심하게 구부러져 있어 강한 움직임을 암시한다.

우리의 시선에 반응해주는 이런 적극적인 표현은 두 조각상에 인간적 매력을 더해주는 듯하다. 그간 이 두 국보 반가사유상을 설명하는 글을 읽을 때 인간적 매력이나 인간미 같은 말은 자주 접하지 못했던 것 같다. 두 사유상은 언제나 절대자의 세계를 보여준다고 알려지면서 신체도 현실을 초월한 개념적 표현으로 여겨지곤 했다.

두 반가사유상을 직접 보니 신체의 표현력이 상상 이상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정말 놀랍게도 살아 숨 쉬듯 인간적 신체와 적절히 조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뒤를 돌아 등 쪽의 어깨선을 보면 정교한 해부학적 표현은 아니더라도 살아있는 신체를 재현하려는 의도가 완연하다. 팔뚝도 둥근 파이프가 아니라 팽팽한 긴장감이 넘쳐 충만한 생명력 ‘프라나(prana)’를 느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반가사유상에 대한 국립중앙박물관의 대대적인 공간 개편이 알려지면서 이에 대해 걱정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도 꽤 있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처럼 브랜드 개념을 도입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실 직접 ‘모나리자’를 마주하면 누구나 실망한다. 작품을 콘크리트 벽에 가둬두고 방탄유리까지 씌워 안전선 밖에선 작품은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국보 78호(왼쪽·옛 번호)와 83호.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런 염려는 괜한 걱정이었다. 새롭게 마련된 전용 전시관은 소극장 규모로 아늑했고, 반가사유상과 관객의 거리도 적절해 감상에 몰입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유리 장식장을 빼버려 작품과 진짜 생생하게 마주한다는 느낌을 주었고, 여기에 조명도 신기하게 반가사유상의 신체 곳곳을 그림자 없이 비추어 감상에 큰 도움을 준다.

명작의 조건이 열린 해석이라면 이번 전시를 통해 반가사유상에 대한 해석도 다채롭게 배가될 것이다. 생각하는 모습을 담은 사유상을 일찍이 이렇게 독립상으로 대범하게 제작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 특히 우리가 반가사유상을 이야기할 때 늘 함께 거론하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경우 19세기가 끝나가는 1880년대에 제작된다.

시기적으로 보면 화려한 관을 쓴 국보 반가사유상의 제작연대는 6세기 후반이고, 단순한 관을 쓴 83호는 7세기 초반에 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83호는 거의 신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학설이 굳어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신라는 불교를 공인한 지 100년 만에 이런 명작을 탄생시킨 셈이다. 그것도 통일전쟁이 거듭되는 살벌한 시대에 이렇게 깊이 있는 인체를 만들었으니 놀라울 뿐이다. 이를 우리 고대 문화의 저력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불교적 가르침에 의한 철학적 감동의 여진인지는 더 살펴봐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짚어야 할 점 우리 조상님들이 근대철학의 제 1명제인 데카르트의 ‘생각한다, 나는 존재한다’를 아주 일찍이 몸소 실천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금동반가사유상은 우리가 생각이 많은 민족이고, 그것의 역사도 아주 오래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 민족은 험난한 역사의 파고를 이 같은 생각의 힘으로 넘어왔다고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이 더 깊게 생각해야 할 일이 많을 텐데, 이때마다 반가사유상의 존재는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이런 엄청난 명작을 이제라도 상설전으로 자주 접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