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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1338] 권력과 은둔

bindol 2022. 3. 14. 05:19

[조용헌 살롱] [1338] 권력과 은둔

입력 2022.03.13 16:14 | 수정 2022.03.14 00:00
 

유교의 지향점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이다. 치인(治人)은 정치를 가리킨다. 실력도 없는 데다가 돈 욕심과 출세 욕구만 강한 상태로는 치인이 불가능할뿐더러 정치가 거덜난다. 조선의 유교는 정권을 잡기도 하고 뺏기기도 하는 일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 시대 각종 사화(士禍), 환국(換局)은 치열하게 이루어진 정권 교체를 상징한다. 가장 격렬한 정권 교체는 반정(反正)과 반란(反亂)이다.

격렬하다는 의미는 수십 명이 아니라 수백 명의 목이 잘리고 수천 명이 섬이나 오지로 유배를 가야만 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패배자의 아내와 딸들은 노비 신세로 전락하여야만 하였다. 성공하면 반정이 되고 실패하면 반란이 된다. 서인들이 일으킨 1623년의 인조반정은 성공한 반란이고, 남인·소론들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1728년의 무신란(戊申亂)은 실패한 혁명이다.

경상우도(경남)에 기반을 둔 남명학파는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학파였다. 인조반정에서 당하고 무신란에 가담했다가 수십 군데 양반 가문이 ‘역적 집안’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채 멸문지화를 당한 학파가 남명학파이다. 퇴계학파의 경북에 비해 남명학파의 경남 지역에 번듯한 고택이 현저하게 적은 이유이다. 그렇다면 그 후예들은 어떻게 쓰라림을 견뎠을까?

 

내공은 쓰라림을 견디면서 생성된다. 그 쓰라림을 달래준 것이 지리산과 도가(道家)라고 보인다. 지리산의 만학천봉(萬壑千峰·수많은 골짜기와 봉우리들)과 천인벽립(千仞壁立·천 길 바위 절벽)이 경상우도 남명학파 후예들의 좌절감을 달래줬다. 지리산이 주는 만학천봉과 천인벽립에서 위로를 얻지 못하면 그 사람은 주색잡기에 빠져서 단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남명학파 1세대인 망우당 곽재우가 신선이 되기 위하여 벽곡(辟穀·솔잎과 콩가루 생식)에 몰두한 일이나,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1546~1632)이 청학동 아래에 있는 하동 쌍계사에서 몇 년씩 살면서 지리산을 맴돌았던 것은 도가적 취향을 대표한다. 아예 불교로 튄 사례도 있다. ‘함양 8선생’ 가운데 한 명이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이다. 명문가 노옥계의 후손 가운데 한 명이 무신란에 가담하였다가 죽게 생기자 머리를 깎고 불교의 승려가 되어 숨어버린 사례는 특이한 사례이다. 당시 중은 천민 계급이었다. 천민이라도 좋다. 머리 깎고 이 산 저 산 숨어 살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못 숨어 있고 다시 나와서 활동하다가 결국은 잡혀 죽었다. 산에서 안 나오고 숨는 은둔도 내공이 있어야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