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푸에블로호 잊지않는 美

‘북한의 푸에블로호 납치 54주년에 관하여’. 미국 콜로라도주 의회에서 최근 민주·공화 양당이 공동 발의해 연방 의회로 보낸 결의안 제목이다.
결의안은 사건 설명으로 시작한다. 1968년 1월 미군 정보 수집함 푸에블로호가 임무 중 공해에서 북한 공격을 받고 나포됐다. 이 과정에서 승조원 1명이 사망했으며, 나머지 82명은 11개월 동안 북한에 억류됐다고 알린다. 이어 올해가 나포 54주년이며, 평양에 전시 중인 이 배는 여전히 ‘임무 중’이라고 적시한다. 결의안은 북한 김정은을 호칭 없이 언급하며 “푸에블로호를 미국인들에게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배 이름 ‘푸에블로’는 콜로라도의 카운티·도시 이름이다. 그래서 “푸에블로호가 우리 콜로라도의 지명으로 명명된 것이 자랑스럽고, 승조원들의 용기와 희생을 기억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포 사건 발생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콜로라도주 의회는 2016년부터 해마다 이 같은 결의안을 발표해왔다.
상징적 의미가 더 강한 이 결의안이 새삼 눈길을 끄는 것은 천안함 폭침 12주기를 코앞에 두고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 때문이다. 여당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 전 대변인이 18일 방송에서 “(천안함 사건이) 무조건 북한 잘못이라고 결정해 말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라고 했다. 북한 소행을 부정하며 한국 사회를 분열로 몰아넣었던 ‘천안함 음모론’이 건재함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2010년 3월 26일 밤 백령도 해상에서 임무 중이던 해군 제2함대사 소속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의 기습 공격에 폭침돼 46명이 전사했다. 해군 공식 홈페이지에 적시된 당연한 사실이 희생자 조국에서 친정권 인사들에 의해 끊임없이 부정당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모 행사에 참석해 ‘북한 소행’이라는 언급을 끝내 하지 않은 것은 진정성을 의심하게 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천안함 사건 날조 동영상을 그대로 게시토록 하고,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재조사 결정을 내렸다가 격앙된 여론에 놀라 번복하는 일이 지난해 벌어졌다.
천안함 음모론은 언제라도 다시 튀어나올 것이다. 그래서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콜로라도주의 푸에블로호 결의안이 시사점을 준다. 정부가 주도하지 않더라도 지역사회가 천안함 진실이 잊히지 않도록 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 가령 푸에블로가 있는 콜로라도 주의회의 경우처럼, 천안이라는 명칭으로 인연이 있는 천안시나 충남도의회에서 결의안이나 추모 조례를 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12년이 지났을 뿐인데, 여전히 천안함 폭침 희생자·피해자들은 수그러들지 않는 모욕·가해와 싸우고 있다. 세월이 흘러 조금씩 잊힐수록 천안함 사건을 왜곡하고 부정하려는 세력이 활동할 공간은 넓어진다. 진실을 알리고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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