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중앙시평] 정치인은 어떤 이름을 남기는가

bindol 2018. 9. 14. 05:19


정치는 승리보다 잘 지는 게 중요
선거 패배 후 오히려 영향력 증대
당파 초월한 협력은 평생의 신념
죽음과 소멸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자신이 어떻게 남겨지고 기억될지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걱정해야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8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의 장례식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매우 이례적인 행사였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이자 6선의 상원의원, 공화당 대통령 후보 등의 길고 화려한 경력보다도 늘 “괴짜(매버릭)”로 불리던 노 정치가의 성향만큼이나 그의 장례식은 온갖 놀라운 요소들로 가득 차 있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인은 무엇으로 살고 어떻게 이름을 남길 것인가라는 매우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던져 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워싱턴 국립대성당(Washington National Cathedral)의 장엄함 속에서 당파를 초월한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인 부시와 오바마가 연이어 조사(弔詞)를 헌정한 장례식-세 시간에 걸쳐 진행되고 생중계됐다-의 규모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것은 같은 공화당 출신의 현직 트럼프 대통령의 참석을 미리 생전에 거부했던 매케인의 비타협적인 태도였다. 자신의 조문객을 스스로 정하는 것만큼 어색한 일이 없었겠지만 아마 이것을 통해 매케인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례식에 참석한 두 명의 전직 대통령들만큼이나 현직 대통령의 부재가 매케인이라는 정치인의 삶과 정치적 유산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돌이켜 생각하면 매케인은 대통령 선거에서 두 번에 걸쳐 처절하게 패배했다.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공천을 위한 경선에서 부시에게 완패했고,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공화당 공천을 받는 데는 성공했지만 민주당 후보인 오바마와 시대적 흐름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패배자로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에게 패배를 안긴 두 명의 전직 대통령들이 그의 생애를 기억하는 바로 그 자리에 나와 흠모의 조사를 남겼으며, 오바마가 한마디로 요약했던 것처럼 이들이 매케인을 통해 더 나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He made us better presidents.”)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원호칼럼

박원호칼럼

그런 의미에서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만큼이나 정치인에게 중요한 것은 “잘 지는 것”이라는 오래된 잠언을 매케인만큼 몸으로 증명한 이도 없을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 언론과 유권자들을 직접 만나면서 허심탄회하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던 “스트레이트 톡 버스(Straight Talk Express)”는 그의 브랜드가 됐고, 두 번의 선거 패배 이후 상원에서 그의 영향력은 오히려 더 확대됐다. 2008년 대통령 선거는 미국에서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선거이기도 하지만 미국 유권자들의 뇌리에 가장 남았던 순간은 유세 기간 중 “오바마는 믿을 수 없는 아랍인”이라고 말하는 지지자에게 매케인이 “아닙니다. 그분은 훌륭한 가장이자 시민이고, 우리는 다만 정책적 입장이 다를 뿐입니다”고 대답한 장면이었다.
 
매케인은 작은 정부와 강경한 대외 정책을 일관되게 추구했던 보수적인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미국의 선거자금법 개혁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은 그의 당파를 초월한 토론과 설득 덕분이었다. 이민법이나 환경법 제·개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의 중심에 항상 그가 있었고, “매버릭”이라는 별명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붙게 된 훈장이었을 것이다. 결국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부통령 후보 출신의 리버먼 상원의원을 자신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지명할 생각이 매우 강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정당 간 대립이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의 목적이 되는 상황, 생각과 주장이 당파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파가 생각과 주장을 만들어 내는 현실, 그리고 당파적 반목과 질시를 억지로라도 생성하고 증폭시켜야만 번성할 수 있는 정당과 정치인들을 그는 끊임없이 경멸했을 것이다. 그런 정치인이 누워 있는 곳에 현직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트럼프가 초대받을 자리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정치인이 무엇을 위해 살고 이들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는 사실 정치학의 해묵은 논쟁거리이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재선(再選)을, 어떤 이들은 권력을, 그리고 어떤 이들은 이권을 좇고 있을 것이며 그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로는 이렇게 죽음과 소멸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후세와 역사에 자신의 이름이 어떻게 남겨지고 기억될 것인지를 걱정하는 정치인이 우리에게 있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매케인이 자서전에 남긴 마지막 말은 헤밍웨이의 한 구절이기도 했다. “세상은 살 만한 곳이고 그래서 싸워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정치인은 어떤 이름을 남기는가